수많은 만약 끝에, 도착한 지금

작은 쓰담 14. 멈춤 속에서 길 찾기

by 차미레
답장이 오지 않는 침묵조차, 결국은 하나의 대답이다.


수많은 만약 중 하나라도 달랐다면 지금 이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사소한 선택, 우연한 만남, 예상치 못한 사건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되돌아보면 그 순간들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모든 조각들이 이어져서, 결국은 지금의 나라는 자리를 만들었다.


연락을 한 건 기다림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한때는 자연스레 이어지던 말들이 여전히 닿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장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억지로 이유를 짐작하지 않아도 된다.

말이 없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된다.


관계의 끝을 인정하는 일은 서늘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언제나 빈자리를 남긴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시작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붙잡고 있던 시간은 이제 흘러가고, 남은 자리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질 것이다.


돌아보면, 모든 끝은 또 다른 만약의 시작이었다.

닫힌 문 앞에 오래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문득 알게 된다. 끝이 곧 공백만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괜찮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그다음 문장은 아직 정하지 않는다.

언젠가 또 다른 만약이 나를 새로운 자리로 이끌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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