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명강의 JUSTICE] 8회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우리는 “노력한 만큼 얻는 세상”을 정의롭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묻는다.
“능력은 정말로 내 것인가?”
오늘은 능력과 정의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A. 능력주의는 공정함의 언어로 말한다.
출신, 배경, 재산이 아니라 노력과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그 이상적인 그림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가지 전제가 숨겨져 있다.
“능력은 개인의 것이다.”
하지만 능력은 타고난 재능, 운, 사회적 조건이 결합된 결과다.
그렇다면 정말 ‘내 노력만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A. 샌델은 말한다.
능력주의는 평등을 가장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너는 네가 노력했으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노력하지 않았으니 이 자리에 있다.”
이 논리는 실패한 사람을 탓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운의 요소는 사라지고, 겸손은 자취를 감춘다.
A. 그것은 자만의 도덕이다.
“나는 내 힘으로 올라왔다”는 믿음은, 타인의 도움을 잊게 한다.
운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성공은 자격이 되고, 실패는 게으름이 된다.
샌델은 경고한다.
“능력주의는 겸손을 잃은 사회를 만든다.”
A. 능력주의는 실패를 도덕적 결함으로 바꾼다.
불운이나 구조적 한계가 아니라, “네가 덜 노력했기 때문이야”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 말은 사람을 더 노력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수치와 자책을 낳는다.
결국 사회는 연대 대신 판단으로 채워진다.
A. 정의는 단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조건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는 도덕적 감각이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그 감각을 약화시킨다.
‘공정’이 ‘공감’을 밀어내고, ‘자격’이 ‘연대’를 대신한다.
그 순간 정의는 더 이상 함께 사는 기술이 아니라, 나의 자리를 지키는 논리가 된다.
A. 샌델은 말한다.
“정의는 우리의 성공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 아님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그 앎이 겸손을 낳고, 겸손이 연대를 낳는다.
능력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은 결국 ‘누가 더 능력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함께 설 수 있는가’를 묻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