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 필요한 그 느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통합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다.
사람을 묶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출발점을 허락하는 구조다.
그 사실을
나는 같은 수업을 두 번 설계하며 깨달았다.
#티칭 너머, 통합이라는 이름의 배움
나는 러닝 퍼실리테이터로서
수업을 설명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으로 연다.
지난 글에서 나는
서로 다른 학교급의 교사들과 함께
질문을 활용한 러닝 퍼실리테이션 수업 설계를 실천적으로 나눈 경험을 기록했다.
초등, 중등, 고등.
서로 다른 학교급의 교사들이
설명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 앞에서 사고하고 선택하는 학습자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수업을,
같은 방식으로 다시 설계했다.
이번에는
초등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교사,
그리고 특수교사까지
모두 초등 교사 5명으로 구성된 자리였다.
똑같은 질문.
똑같은 구조.
똑같은 퍼실리테이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수업이 답답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답답함.
마치
보이지 않는 틀 안에 모두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
그 틀이 생각의 확장을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초등교사다.
그 ‘틀’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수업을 설계해 나가며
나는 처음으로
‘통합’이라는 단어를
이론이 아니라 감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통합은 섞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통합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그날 내가 느낀 통합은
모두를 같은 방향으로 묶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각자가 서 있는 자리,
각자의 언어,
각자의 익숙한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초등 1학년을 떠올리는 교사와
특수교육의 맥락에서 질문을 바라보는 교사는
같은 질문 앞에서도
전혀 다른 지점을 먼저 본다.
그 차이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초등’이라는 이름 아래
이미 비슷할 것이라 가정해 버린다.
그 가정이
생각을 좁히고,
질문을 단순하게 만들고,
수업을 예측 가능한 틀 안에 가둔다.
그날의 답답함은
역설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통합, 수준의 통합, 내용의 통합
그 경험 이후
나는 통합을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통합은 사람의 통합이다.
서로 다른 전문성, 다른 시선, 다른 언어를
지우지 않고 함께 두는 것.
통합은 수준의 통합이다.
학년, 발달, 역할의 높낮이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드는 것.
통합은 내용의 통합이다.
교과서의 단원이 아니라
사고의 흐름과 질문의 연결로
배움을 엮어내는 것.
이 모든 통합의 출발점에는
차이를 인정하는 용기가 있다.
같아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다름을 전제한 채
그 다름이 어떤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함께 탐색하는 태도.
어쩌면
통합이란
다양성을 포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퍼실리테이터로서, 다시 질문 앞에 서다
같은 주제의 수업을
두 번 설계하며
나는 교사로서,
그리고 퍼실리테이터로서
다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이 구조는 누구의 사고를 중심에 두고 있는가?
이 질문은 모두를 열어 주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있는가?
통합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설계 속에 숨어 있고,
질문의 결에 묻어 있으며,
함께 머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티칭을 넘어
러닝 퍼실리테이션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잘 가르치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끝없이 다시 묻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