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만화 삼국지』가 남긴 혼란의 시대를 건넌 선택의 기록
삼국지의 영웅들은 언제나 정답을 알고 움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정보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선택해야 했던 존재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영웅의 서사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를 건너며
선택해야 했던 인간들의 기록으로 남는다.
만화에 대한 편견은
생각보다 오래 나를 붙잡고 있었다.
이문열의 『만화 삼국지』는
10년 동안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손을 뻗지 않았다.
‘삼국지’라는 이름이 만든 벽,
그리고 ‘만화’라는 형식이 덧씌운 선입견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편견은 책에 대한 것이기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어떤 태도에 가까웠다.
깊은 사유는 늘 무거운 형식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
교사로서 ‘읽어야 할 책’과
‘그저 읽는 책’을 나누어 왔던 오래된 습관 말이다.
이번에 읽게 된 건
계획도 결심도 아닌,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1권이 사라져 있었다.
중고서점을 뒤져 책을 주문했지만
결제는 세 번이나 취소되었다.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는 겨우 1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은 방해가 아니라 질문에 가까웠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이 이야기를 읽으려 하는 걸까.
어쩌면 이미 나는
이 책을 ‘교재’가 아닌
‘사유의 텍스트’로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그 모든 시간이 무색해졌다.
열 권의 책을
24시간에 걸쳐
정말 미친 듯이 읽었다.
삼국지라는 이름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서 있던 시간이
하루 만에 무너졌다.
교사로서 수없이 들어온 이름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공명—
그런데 이번 독서는
그들을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 속에 놓인 인간으로 보게 했다.
유비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인의’는
도덕적 우위라기보다
끝내 놓지 않기로 한 기준처럼 읽혔다.
제갈공명의 지략은
전지전능한 천재의 능력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반복해야 했던
한 인간의 고독에 가까웠다.
나는 교실에서 종종
아이들에게 ‘옳은 선택’을 묻는다.
하지만 『만화 삼국지』를 읽으며
그 질문이 얼마나 쉽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혼란의 시대에는
옳음보다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있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책 속의 영웅들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모델이 아니라
각자의 한계 안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사람들로 남는다.
그 점에서
그들은 위인이기보다
내게는 스승이었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나는 종종 답을 가진 사람처럼 서 있지만,
이 책은 나에게
다시 묻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