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렇게 닳아가는 것 같을까

작은 쓰담 22. 몸보다 더 지치는 비교의 마음 내려놓기

by 차미레
다독이고 싶으면서도
자꾸 나에게 짜증을 낸다.
몸이 보내는 신호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더 버겁다.


나이가 들수록

아픈 데가 늘어난다.


무릎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어깨가 버티다 말고,

어느 날은 이유 없이 피로가 눌러앉는다.


이해는 한다.

시간이 쌓였으니

몸도 닳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데

이해와 수용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다독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럴 수 있지.”

“그만큼 썼으니까.”


하지만 그 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건

짜증이다.


왜 또야.

왜 하필 지금이야.

왜 나는 점점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더 힘든 건

비교다.


누군가는 여전히 잘 달리고,

누군가는 새 운동화를 신고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는 더 단단해 보인다.


나는 자꾸 멈추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구겨진다.


혹시

나만 이렇게 고장 나는 건 아닐까.

나만 유난인 건 아닐까.


사실은 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통증을 숨기고 있다는 걸.


하지만

비교는 늘

남의 겉과

내 속을 붙여놓는다.


그 불공평한 기준 앞에서

나는 자꾸 작아진다.


요즘 나는

나를 다독이는 사람과

나를 다그치는 사람이

같이 산다.


“좀 받아들여.”

“이제 나이야.”


그 말이

위로인지

체념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예전의 나를 놓지 못해서 더 아픈 건지도 모른다.


잘 버티던 나,

덜 피곤하던 나,

멀쩡하던 나.


그 사람과 계속 비교하느라

오늘의 나를 자꾸 밀어낸다.


그래도 오늘은

완전히 다독이지는 못하더라도

이 말 하나만은 남겨두고 싶다.


짜증 나는 나도

지쳐 있는 나도

이상한 건 아니라는 것.


비교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까지

지금의 나라는 것.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도

괜찮다.


아직은

짜증이 더 큰 날이니까.


그래도

그 짜증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이전 21화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자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