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쓰담 21. 오늘을 보험처럼 살기
내일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불안을 밀어내는 대신
오늘을 보험처럼 들고
하루를 건너고 있다.
보험이라는 단어는
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시작된다.
그 불안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끝내 실감되지 않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건이
내 삶에 들이닥쳤을 때.
그리고-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혼자 불안을 삼키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쓰나미처럼 일이 덮쳐 올 때.
그때 느끼는 감정,
아마 그것이 불안이지 않을까.
갓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알게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대학 4학년쯤 되었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진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구나.”
그땐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 친구가 손목을 그었던 날,
아주 어렴풋하게 짐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요즘에서야
나는
불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당연한 내일이 사라진 뒤어야,
그 너머
내년을 기약한다는 것,
그 이후의 삶을 그려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막연한 희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 감각.
그 불안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내 주위에서
지금의 내 상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줄 모른다.
그저
치열하게 사는 사람,
즐겁게 사는 사람,
호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또한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아직도
조금은 세상의 평판이 신경 쓰인다.
살아 있는 동안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전처럼 나를 붙잡지는 않는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불안을 견디기 위해
지금의 삶을 위한 보험을 든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보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