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단상 - 취미에 대하여
나는 취미가 꽤나 많은 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취미를 넘어 일상이 되었고, 생각을 비우기 위해 가볍게 집 앞 천을 뛰다 보니 어느새 마라톤 코스를 뛰고 있었다. 난잡하지만 정돈된 밴드 사운드가 좋아 종종 공연을 보러 다니다 보니 또 어느새 직접 베이스를 들고 무대 위에 서기도 했고, 동네를 가볍게 산책하다 보니 또또 어느새 일본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서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다.
이 외에도 여름만 되면 찾아가는 수영장, 중고 거래로 싸게 구한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 없이 하루 종일 다리 구르기, 한적한 카페 구석에서 멍때리며 생각 비우기, 혹은 채우기, 동대문 악세사리 상가에서 부자재를 한 움큼 쥐어 와 요란한 악세사리 만들기, 또 동대문에 간 김에 옆 동네 동묘로 넘어가 빈티지 옷 사오기, 혼자 거하게 취하고 벤치에 앉아 사색하기, 그러다 갑자기 삘이 꽂히면 혼자 클럽에 가 미친 듯이 춤추기. 등산하기, 명상하기, 차 마시기, 혼자 노래방가기, 일본어로 혼잣말하기…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다채로운 취미 덕분에 인생이 지루하지 않고 도파민으로 가득 찰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몇몇 취미들을 제외하곤 모두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취미들이다. 흘러가는 20대가 아까워서, 혹은 인생은 재미난 일들로 가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취미들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이 취미들을 놓아버리면 다시 공허해질까봐, 인생이 다시 무의미해지고, 후회로 가득할까봐 나는 이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취미의 수명이 다해도, 하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질질 끌고 가며 취미의 개수를 유지하고, 또 늘려간다. 언젠간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라는 불확실한 마음으로.
나에게는 취미에 대한 뒤틀린 철학이 있다.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마음은 불량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는 이 활동들이 나에게 큰 의미로 돌아온다는 믿음. 그 믿음은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거대하게 자라서 나를 압박한다. 남들 열심히 공부할 때 나도 열심히 가꾸고 있는 중일거야.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활동이겠지. 그냥 즐기고 마는 게 아니라고. 이런 행위들은 나를 성장시키고 개발시킬 거야.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자.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가치를 과장하며 스스로를 위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자기착취가 발현된다.
‘갓생’이라는 단어를 아시는가? 현생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하는 뜻으로 불리는 갓생은 취업을 준비하는 내 또래에서 꽤나 유행하는 단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분 단위로 하루를 계획하고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일. 통학버스에서 토익 단어를 외우고, 스터디원들과 함께 면접을 준비하고, 각종 대외활동이나 공모전 등에 참여하며 스펙을 쌓아간다. 어떤가. 부모의 시선에서, 또는 사회인의 시선에서 이런 갓생은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가?
자기개발의 대명사인 갓생과 자기착취는 언뜻 보면 반대되는 말 같지만, 사실 그 과정은 비슷하다. 착취라는 단어는 계급 사회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 수단을 갖지 않은 생산자로부터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한다는 뜻인데, 그 앞에 ‘자기’가 붙는다면 소유자와 생산자가 동일해진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는 것. 이러한 착취엔 얻는 사람도, 잃는 사람도 없다. 내가 내 시간과 노력을 소비한 만큼 성과를 얻는 것뿐이다.
갓생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나는 그만큼 성장한다(고 믿는다.) 다만 갓생의 사회적 의미가 ‘나’를 위한 개발이 아닌 ‘남’을 위한 개발인게 문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조각칼로 깎아버리고, 그 자리에 사회가 원하는 조각들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도록 자신의 가치를 바꾸는 것.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사람들은 나의 인생을 갓생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남’이 봤을 때 열심히 살아야 비로소 그 인생은 갓생이라고 불린다.
나의 그릇된 취미철학 역시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좋았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뛰는 것도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무아지경으로 그것에 빠져들었을 때 문뜩 시계를 보면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 정도로 시간을 투자했으면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남이 봤을 때 조금 더 매력적이거나 혹은 스펙으로 쓰일 수 있진 않을까? 이 활동을 이 직무에 연관시키려면 아무래도 파워 블로거나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할까? 나의 취미들이 정말로 나를 성장시킨다고 할 수 있을지 점차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내 취미가 이토록 많아진 이유는 공허함 때문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그 마음 때문에 취미를 늘린 게 확실하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언젠가 하나는 걸리겠지라는 믿음. ...뭐 그런 믿음이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성격상 가만히 있는 것 보단 뭐라도 하는 게 마음 편하니까. 하지만 취미와 관심사를 여러 개 늘렸다고 해서 그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내 행동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고, 의미를 찾아내기에 급급했다.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쓰고 싶지 않은 원고들을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자기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나 자신을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