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국보다 낯선』 - 이장욱(민음사,2013)
그런 기억이 있다. 분명 모두가 동일한 장면을 보았지만, 전혀 다르게 추억하는 기억들. 예컨대 작년 계곡에서 마주친 동물이 너구리였는지, 여우였는지 1시간 동안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어렸을 적 가족끼리 놀이동산에 갔던 건 초등학교 입학 전이니 후니 서로 우기는 것들이 그렇다. 이런 논쟁에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말이 옳음을 증명해야 할 뿐.
하도 이런 말다툼이 쌓이다 보니 혹시 그들과 내가 다른 세계에서 경험한 장면이 우연히 겹친 건 아닌가 싶다. 한쪽이 사자 동상을 등지고 브이를 하고 있을 때, 반대쪽은 우연히 사자에게 잡아먹힌 꿈을 꾼 것처럼. 두 가지 사건은 서로 수평적으로 마주 보고 있어 이어질 수 없지만, 때론 이 희한한 세계의 시스템적 오류로 한 점에 수렴하기도 한다. 음악의 근본적인 성질인 수직성을 수평성으로 치환하는 *대위법처럼 말이다.
*주로 화성악에 쓰이는 용어로 두 가지 이상의 멜로디를 하나로 결합하는 작곡법.
이장욱의 장편소설 <천국보다 낯선>에 등장한 인물들이 겪은 기괴한 현상이 그렇다. 소설은 세 명의 대학 동기들이 또 다른 친구 A의 장례식에 가며 A와의 기억을 회상하는 식인데, 그들 모두 A라는 인물을 다르게 기억한다. 그저 손끝을 스쳐 가는 강물 같은 인연이지만 그녀와 섞이길 바라는 무명작가 ‘정’과 A를 사랑하지만, 자신도 무슨 이유인지 모른 채 정과 결혼한 보험설계사 ‘김’. 그리고, 자신이 A를 사랑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한 맺힌 유령처럼 그녀 주위를 빙빙 떠다니는 사회학과 교수 ‘최’까지. 그들이 맞춰야 하는 퍼즐의 틀은 동일하지만,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A라는 퍼즐 조각은 모두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차가 A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널에 진입한 이후, 그들의 삶은 한 곳으로 수렴한다. 이전에 차 안에서 그들이 내뱉은 말들은 의식 없는 혼잣말에 가까워 대화라고 볼 수도 없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의 일치를 경험한다. 그들은 그제야 A의 세계에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자는 느낄 수 없는 영혼의 합치를 경험하며.
터널은 약간 흰 채 뻗어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긴 터널이 있었나··· 나는 중얼거렸다. 길고, 어둡고, 정지할 수 없는 터널이었다. 터널이란 참으로 알맞은 인생의 비유가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다. 입구와 출구의 사이는 일직선이다. 샛길이나 갓길 같은 것은 없다. 말하자면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을 뿐이다. 샛길이나 갓길 같은 것은 없다. 인생은··· 터널이다. P.103
고속도로의 한 터널에서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친구의 장례식을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은 또 다른 동기 ‘염’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마치 자신이 사는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식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동기들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고, 전화기도 모두 꺼진 상태.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길 몇 차례. 저 멀리서 승용차 한 대가 염에게 다가온다. 승용차에 내린 인원은 모두 세 명. 그러나 형체는 불분명하다. 과연 그들은 염이 기다린 친구들이 맞을까. 염이 사는 세계는 그들과 통할 수 있을까.
총 13장의 챕터에 등장하는 배경은 고작 한밤중의 고속도로에서 나눈 대화뿐이다. 매 챕터마다 1인칭으로 화자가 변화하고, 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서술되지만, 인물들의 머릿속에 스며드는 기억은 전부 다르다. 각자 다른 기억들은 낯선 추억을 형성한다. 설령 그들이 한곳에 모여 A가 만든 독립영화를 보았을지라도 그곳엔 5개의 각색본과 5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소설 밖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억 개의 가락이 들쭉날쭉 나뒹구는 세계에서 우리는 아주 미묘하게 서로의 기억을 맞댈 뿐이다.
명료한 세계와 모호한 인간 사이에 중간 지대 같은 것은 없다. 명료한 세계 속에서 모호한 인간들의 권력투쟁이 끝나지 않을 뿐이다. 모호한 의미를 규정하고 장악하려는 인간들 간의 싸움이다. 인간이 명료함의 일부가 되는 것은, 죽음의 순간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의 모호함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다. 모호함이 제로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명료해 지는 순간이다. 인간이 세계 자체가 되었으니까. 나는 가끔 내가 그런 세계를 꿈꾸고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명료한 유토피아를.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