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서평 - 박찬국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집 근처 시립도서관 휴게실에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으려고 할 때였다. 도서관의 휴게실은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어서 혼자 음식을 먹거나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라 점심시간에는 항상 사람이 가득했다. 나는 아침에 먹다 남은 김치볶음밥과 삶은 계란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는데 휴게실 구석에서 한 모자가 투닥이는 소리가 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9가 아니잖아. 아까는 잘 풀었는데 왜 숫자만 바꿨다고 이해를 못 하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의 어머니가 휴게실 한켠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주고 있었는데 아이가 문제를 잘 풀지 못했는지 점차 아이를 다그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아이 역시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답답했는지, 아니면 황금 같은 주말을 도서관에서 보내기 싫었는지 계속해서 다리를 떨며 집중하지 못했다. 간단한 문제도 풀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아들은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아이가 답답했고, 아들도 엄마가 답답하다.
나는 휴게실의 모자를 보고 부모의 "사랑"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번뜩 올바른 사랑이란 무엇일지 궁금해졌고, 남은 밥을 허겁지겁 먹은 뒤 도서관의 철학 코너로 달려갔다. 그들의 답답함 역시 첫출발은 누군가의 사랑이었을 터. 나는 책장에서 에리히 프롬을 찾았고 가장 읽기 쉬워 보이는 책을 하나 골랐다. 내가 고른 책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박찬국이 쓴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나는 이 책에서 그 모자의 다툼과 사랑을 연관시킬 수 있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프롬은 사랑만이 우리를 불안과 절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만으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니. 너무 이상적인 소리 아닌가? 정말로 사랑만 있다면 모든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인생의 여러 사건들을 접해본 결과 사랑만으로 불안이 해소된다는 것은 다소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프롬은 우리가 주위에서 접하는 많은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왜곡된 사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진짜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그려내기 위해 아이의 엄마가 직접 수학을 가르치는 일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이 지원을 해준다면 부모는 그것이 곧 사랑의 증표인 줄 안다. 프롬은 돈과 명예, 지위 등의 소유 양식과 지혜, 사랑 등의 존재 양식을 구별하며 소유 양식이 아닌 존재 양식에 더 집중할 때 인간이 불안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가 아이를 자신의 일부라고 느끼고 있는 한, 아이에 대해서 어머니가 느끼는 자랑과 사랑은 자기도취 적인 만족일 가능성이 크다."(p.35)고 하며 소유 양식으로 아이를 대할 때의 위험성을 얘기한다. 아이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잘못된 사랑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어 한다"(p.39)
다른 아이들은 다 다니는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성인조차 어려워하는 코딩학원과 어마어마한 경쟁률의 영어 유치원까지. 아이의 하루는 가만 보면 부모의 하루보다 더 바쁜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교육과 조기교육, 남들보다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경쟁의식까지. 아직 10살도 채 안된 아이들에게 우리는 과도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아이의 길을 한 가지로 좁힌다. 이 모든 것이 아이가 원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남들 못지않게 사교육을 받았던 나의 경험으로 봐서는 대부분 부모의 선택일 확률이 매우 높다. 분명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겠지만 그 속에 "부모의 욕심"이 섞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모든 부모의 사랑방식이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사랑을 받는 역할만 해왔고, 풍족한 지원만이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다. 프롬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자기애의 경험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p.183)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이 아닌, 충분한 자기애로부터 흘러나온 자연스러운 사랑인 것이다.
인생의 교훈을 얻기 위해 철학을 꾸준히 공부하지만, 가끔은 철학이 너무나도 밉다. 글을 통해 배운 철학인들의 이상과 현실이 종종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들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다.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선생님?" 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고 선택은 나에게 달렸다.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또 적절하게 자신의 이상을 그려나가야 할 뿐이다. 그토록 어렵고 모호해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사랑과 행복의 정의. 유년시절 받아왔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고 타인에게 주었던 사랑을 곱씹어보며 모두가 자신만의 올바른 사랑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