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적인 사랑에 대처하는 자세

[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 서평 - 이언 메큐언

by 지하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신비하다. 때로는 아름다운 서사의 필수요소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간지럽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망가뜨리는 날카로운 무기로 변모하니 말이다. 사랑만큼 양면의 얼굴을 갖는 감정이 또 있을까? 아름답고도 잔인한 사랑의 속성에 진정한 사랑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진다.


어떠한 것도 과하면 좋지 않다는 말이 사랑만큼은 빗겨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 역시 과유불급. 지나친 사랑의 감정은 우리를 지치고 괴롭게 만든다. 더군다나 쌍방향의 사랑이 아니라면 이는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어느 유튜버가 말하길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실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라고 했던가. 나의 좋아하는 감정이 누군가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면서도 안타깝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 그 잘못된 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 집착? 질투? 광기?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든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면 그것이 잘못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사랑은 누구도 제재하지 않지만 그것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치는 순간, 자신의 사랑이 정당한 사랑인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곧 폭력으로 불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언 메큐언의 장편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에서는 광적인 사랑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주인공 '조'는 사실혼 관계인 클래리사와 안정적인 연애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공원에서 발생한 열기구 사건 이후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갖고 있는 '패리'와 우연히 만나며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조'가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망상에 빠진 '패리'는 지독하게 그를 괴롭히며 광적인 사랑을 표현한다.


"드클레랑보 증후군"은 자신이 상대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망상장애의 일종이다. 이는 스토커의 주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망상의 대상과 접촉이 없었음에도 발생할 수 있는 특이한 증상이다. 이 증상의 기원은 20세기 초 한 50대 프랑스 여성이 영국 궁왕 조지 5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국왕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모든 영국인들이 알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커튼이 단순히 흔들리는 현상을 국왕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로 착각할 만큼 그 정도가 심했다고 한다. 사랑으로 비롯된 현상을 "병"으로 결론짓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상대방이 느꼈을 고통을 생각해 보았을 때 "드클레라보 증후군"은 망상장애를 가진 정신병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가. 마치 내가 존재의 틈 사이로 떨어져서 또다른 삶, 또다른 성적 지향, 또다른 과거사와 미래 속으로 빠져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거 잘 알잖아요,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있는 삶 속으로 …" (p.105)


'패리'의 끝없는 집착과 광기 어린 사랑에 주인공 '조'의 일상은 서서히 붕괴된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편지, 새벽까지 집 앞에서 그를 지켜보는 광기까지. 평범했던 그의 일상은 서서히 망가져가고, 애인 역시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주인공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분명 그는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임에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말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다는 사실에 그의 정신적인 피해는 더욱 커지고 총기를 구입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소설의 마무리는 언뜻 보면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 나에겐 비극처럼 보인다. 물리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떨어지게 되더라도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회복되지 않는다. 누군가 사랑이라고 외친 그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잔인한 비명소리가 되어 평생 동안 귓가를 맴돌게 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비롯된 채별, 가스라이팅, 강압적 희생 등의 정당화할 수 없는 사랑을 우리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 즉, "광기 넘치는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혹은 주고 있는 것이 정말로 사랑이 맞을까?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감정을 요구하거나 강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상대방의 잘못된 사랑에 익숙해져 내가 길들여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혹시라도 현재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본인의 사랑을 이성적으로 의심해보아야 한다.


최근 '사랑'을 주제로 한 글을 많이 쓰고 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수천 가지의 사랑을 발견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랑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어쩌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인간)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만큼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살아있음에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처럼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사랑이 무엇인지 당최 모르겠으니 말이다.


keyword
이전 06화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