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팔꿈치를 주세요> 서평 -황정은 외
사람의 감정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랑"이 아닐까. 이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사랑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랑,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사랑과 이것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애매한 사랑까지. 이 세상엔 사랑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고, 또 사랑이라 불러야 할 사건들이 너무 많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뿌리를 두고 수많은 단어들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복합적인 감정 중심부엔 분명하게 사랑의 보금자리가 있을 테고, 우리는 사랑의 에너지로 살아가는 거라고. 모든 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조금 징그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별 수 없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세상이 그 증거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과 감정의 기원인 사랑은 근본적이면서도, 쉽게 차지할 수 없는 역설적인 녀석이다. 내가 믿었던 사랑은 누군가의 단 한마디에 환상이 돼버리고, 네가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며 외부의 목소리에 자신의 사랑을 평가받기도 한다. 인간은 평생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지만 평생의 목표가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우리를 울고 웃게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작가 황정은을 포함한 6명의 여성작가가 쓴 책 <팔꿈치를 주세요>는 퀴어문학 출판사인 "큐큐"에서 제작한 "큐큐퀴어단편선" 4번째 시리즈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젊은작가들이 꽤 많이 이 단편선 제작에 참여하여 눈여겨보던 중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았다. 6개의 단편 소설이 묶여있는 소설집이고 페이지는 약 250페이지 내외.
6가지의 소설 모두 퀴어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읽는 동안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6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보편적인 사랑과 형태가 달라도 그들 모두가 만지고 있는 것은 사랑이 분명했다. 작가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주체가 "퀴어"가 아닌 "사랑"이라고 믿고 싶고, 읽는 독자 역시 나와 "다른 사랑"이 아닌 모든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팔꿈치를 주세요.
<모린 中>
시각장애인이 팔꿈치를 달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에서 나의 눈이 되어 달라는 것. 나의 몸을 맡길 수 있는 일부가 되어달라는 것. 나의 사랑을 담을 그릇이 되어달라는 것. 정말 믿을 사람이 아니면 나의 몸을 맡기지 않는 것처럼 정말 믿을 사람의 팔꿈치가 아니면 잡지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비롯된 팔꿈치가 아니라면 말이다.
50대에 찾아온 변성기는 또 어떠한가? 자신보다 30살이나 젊은 신입성우를 보고 느낀 묘한 떨림. 무얼 하든 자꾸만 신경 쓰이고 생각나는 얼굴. 사춘기 시절의 소녀가 된 것처럼 찾아온 몽정과 변성기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딱 하나밖에 없다. 아무리 열매를 따고, 가지를 잘라도 그 뿌리는 바뀌지 않는 것처럼 모든 감정의 시작이 사랑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죽은 어머니의 영혼이 딸을 사랑하는 것과 특이한 사랑이 평범한 사랑이 되는 곳으로 이주한 커플,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 두 개의 자아까지.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은 "더욱더 많은 사랑을 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내가 사랑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다.
태진아가 부른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맞는 말이다. 아무나 하지 못하고 어려운 게 사랑이다. 더욱이 따가운 시선과 편견에 맞선 사랑이라면 그 난이도는 몇 배는 더 곱해야 할 것.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하고 있다. 각자의 스테이지에서 각자의 캐릭터로 사랑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누가 타인의 사랑을 못생겼다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홍채보다 더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어느 누가 객관화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틀린 사랑인 "누군가의 사랑을 판단하는 사랑"을 제외하고 우리는 영원히 사랑을 탐닉해야 하다. 찾다찾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나의 사랑을 쟁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