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풍족한 사랑

[소설] <구의 증명> 서평 - 최진영

by 지하


사랑에는 재화가 필요하다.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한 돈,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상대방의 마음을 감당할 수 있는 감정까지. 어떠한 사랑이라도 자신의 무언가를 소비하지 않고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내주며 사랑을 확인한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는 세상에서 사랑 없이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가난한 사랑이란 재화가 적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정적인 여유와 넘치는 시간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종종 가난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족스러울 만큼 풍족한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공허하고 빈곤함 말이다.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에 등장하는 '구'와 담'의 사랑을 곱씹어 본다면 우리가 느끼는 가난한 사랑과 풍족한 사랑이 무엇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소설 <구의 증명>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구'와 자신을 돌봐준 이모의 죽음으로 역시 혼자가 된 '담'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자발적으로 사회를 등지는 이른바 '청설모'의 삶을 살아간다. 가난과 따돌림, 빚쟁이로부터 쫓기는 생활, 부모의 무관심, 소중한 사람의 죽음,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일상인 그들에게 의지할 것이라고는 서로밖에 없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함께 공유하는 감정은 '사랑' 그 이상의 것으로 변화한다. (구와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관계였다. p.76)


그러나 구와 담이 숨을 쉬고 있는 '현실'에서 구가 죽었다.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부모가 남긴 빚을 떠 앉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이리저리 도망치던 청설모 '구'가 세상의 폭력으로 인해 숨을 거둔다. 더 이상 현실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구' 이지만 '담'은 그가 죽은 것은 단지 지옥 같던 '현실'일뿐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시신을 잘라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한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가 세상에서 지워지기 전에, 죽어도 '구'와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담'은 '구'의 육신을 집어삼킨다.


'담'이 죽은 '구'를 먹는 이유는 '구'가 "인간적"으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인간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천 년 후의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그때에도 돈이 존재를 결정할까. 대체 뭘 먹고살까. 지금의 '인간적'이라는 말과 천 년 후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를까..."(p.9)라고 말한 담의 독백에서 세상이 규정한 '외적 요소'의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돈이 없는 것만으로 '가난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 현대 사회. 돈이 없어 비롯된 것만 같은 그들의 불행한 사랑에서 '담'은 그들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구'의 시신을 절대로 세상에 빼앗기지 않다고 다짐한다.


'담'의 식인행위는 분명 비도덕적이고 인간파괴적이라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인간적"이라는 요소는 무엇인가. 어떤 이들보다 풍족한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가난하다고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사랑을 이륙한 그들에게 우리가 어찌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서사를 배제한 채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사랑을 판단한다면 우리 역시 "인간적"인 인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가난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상에 이름을 지운 채 공장에서 일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이곳저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삶. 어찌 보면 이것이 분명 가난한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가난함과 동시에 풍족하다. 서로가 없다면 채워지지 않는 사랑. 언제 어디서라도 서로를 기억하고 그리는 사랑. 사랑 그 이상의 감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랑. 결국 한 명이 죽은 뒤에야 그들은 하나가 되었지만 둘 중 누구도 그들이 가난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풍족하면서도 가난한 사랑을 겪었던 나의 과거를 기억해 보며, 진정 풍족한 사랑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부디 '구'와 '담'의 사랑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길 바라며. 그들의 사랑이 천년 뒤에는 인간적인 사랑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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