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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un 30. 2023

자유를 꿈꾸는 이들에게

[소설] <여름의 빌라> - 백수린 

"자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요동친다.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지고,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음에도 끝내 손에 움켜쥘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자유를 쟁취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반면, 누군가는 인간은 평생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유를 포기한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어떠한 신념이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싶은 본능을 갖고 있다. 그게 정신적 자유든, 신체적 자유든, 경제적 자유든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싶고, 무의식적으로 자유를 원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겐 왜 자유가 필요할까? 그리고,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 백수린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문학동네에서 발간한 <여름의 빌라>는 백수린의 소설집이다. 저자는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의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폴링 인 폴』『참담한 빛』중편소설『친애하고, 친애하는』짧은 소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등을 썼다. 2023년 5월, 같은 출판사에서『눈부신 안부』라는 제목으로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목차는 총 8가지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음과 모음, 창작과 비평, 문학동네 등의 계간지에 실린 4년간의 작품을 엮었다. 해설 포함 약 300페이지 분량이지만 각 작품의 길이가 길지 않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건 내 것이란다"     


소설집에 실린 각 단편 속에서 인물들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각기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외부요소로 인해 자유를 상실하였고, 다시금 자유를 되찾길 바랐다. 단편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속 ‘그녀’는 이른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의 꿈인 무용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결혼과 출산은 그녀의 선택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의 상실감을 감내해야 하지만, 죽을 때까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상 자유의 부재를 쉽게 수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으로부터 오는 사회적 행복과 자유를 거머쥐었다는 개인적 행복은 별개의 것이니까.     


「흑설탕 캔디」 속 나의 할머니 ‘난실’ 역시 자유를 상실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난실’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한국에 살고 싶었지만 아들의 해외출장과 손자를 돌봐야 하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프랑스로 떠났고, 함께 감정을 공유할 이웃 ‘브뤼니에’씨와 만나기 전까지 혼자 외로움을 감당해야 했다. 가정의 존재 덕분에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난실’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야근 때문에 바쁜 아들과, 사춘기 손녀밖에 없었던 그녀를 우리는 결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다름과 문화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난실’은 동년배 ‘브뤼니에’와 감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지만, 아들의 출장 종료라는 외부적 요소로 인해 다시금 자유를 빼앗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선택이든 외부의 상황이든 다른 구성원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인간은 개인의 자유를 온전하게 누리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만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계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그 무엇보다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 죽기 직전까지도 ‘난실’이 손에 꼭 쥐고 있던 ‘그것’과 같이 인간에겐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자유가 존재할 것이다.



분리할 수 없는 자유와 책임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p.265     

사람과의 관계에 속했음에도 개인의 자유를 쟁취한 인물도 존재한다. 단편 「폭설」 속 주인공의 어머니는 가정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했음에도 사랑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남성과 불륜을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인과의 사랑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머니로서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어찌 보면 사회적 관계를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탈피하고 자유를 쟁취한 진보적인 인간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딸이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브래지어와 생리 등 성장기 소녀가 겪어야 할 고충을 외로이 겪어야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행동은 자유의 쟁취보다는 어머니라는 책임으로부터 회피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자유와 책임을 반대적인 것으로 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유와 책임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자석의 양극과 같다. 특히 이러한 자유와 책임의 문제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더욱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가족이 쉽게 분리될 수 없는 특성 때문이다. 책임의 무서움을 이미 경험해 본 부모와 자유의 달콤함을 맛보고 싶은 자녀는 서로가 답답하기만 하다. 자녀는 ‘내 말이 맞으니 너는 따르기만 해’라는 부모가 밉고, 부모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곤 부모에게 책임을 떠미는 자녀의 모습이 속상하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함에도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 관계가 참 애석하기만 하다.            

   


자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롭지 않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유를 원하지만, 그 자유 역시 책임으로부터 100%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바라는 '책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유'는 이상에 가깝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는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평생 느껴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를 꿈꾼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을 짊어내며 닿지 않을 것만 같은 자유를 향해 한 발자국 씩 나아가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멍청하다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 자유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계속해서 자유를 꿈꾸라고 말하고 싶다. 자유란 살아있는 인간의 존재 의의이자, 평생 동안 좇아야 할 최고의 가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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