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걸어라, 우리 딸

꽃편지 12

by sunny

엄마는 드레드 숍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더 바빴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출근한 후였다.


"엄마 드레스 만들어?"

"반짝반짝 공주님 드레스?"


중학교 입학 무렵에야 알았다.

엄마는 소위 이모님이라 불리며

이 결혼식장 저 결혼식장 다니며

드레스를 입혀주고, 주름을 펴 주고

긴 드레스 자락 밟히지 않도록

신부를 보살피는 일을 한다는 걸.


디자이너도 아니고

실장님도 아니고

그저 이모님으로 불리는 엄마가

나는 왜 그리 미웠을까.


큰 언니 결혼하던 날,

귀하고 귀한 날이라며

엄마는

한사코 자신의 손으로 드레스를 만지며

유난을 떨었다.


"엄마 쫌!"

빽빽 거리는 나의 성화에

하는 수 없이 신부 대기실을 나오며

엄마가 혼잣말을 했다.


"꽃길만 걸어라 우리 딸.

자갈길, 흙탕 길 엄마가 다 걸었으니

너는 꽃길만 곱게곱게 걸어라"



한동안 나는 결혼식 신부 도우미 전담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니 점점 도우미 역할에 노하우가 생겼다. 일단, 웨딩업체에서 파견 온 도우미 이모님께 싹싹할 것. 물과 음료,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간단한 간식 등을 준비할 것. 신부를 위한 빨대는 필수.(빨대를 사용해야 립스틱이 지워지지 않는다.) 신부의 지인들이 맡긴 선물, 편지, 현금봉투 등을 보관할 넉넉한 사이즈의 여분의 가방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름 신부 도우미로서의 경력을 쌓아갈 즈음, 친언니의 결혼식을 맞이했다. '아~~~' 그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도우미 이모님 심상치 않다!' 슬픈 예감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지. 꽉 막힌 한남대교 위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신부님 이세요? 아... 동생분이세요? 신부대기실에 이모님께서 짐을 다 두고 가셨네요." 세상에나, 세상에나. 메이크업을 마친 신부만 데리고 샵을 빠져나온 이모님이라니.


친언니의 결혼식은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식장 앞에 서서 퀵기사님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렇게 가까스로 폐백에 입을 한복과 신혼여행지에서 입을 평상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귀한 날이니 화 내지 말라는 어른들의 당부에 이모님께는 큰 소리로 항의도 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나는 신부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될 때면, 도우미 이모님이 이미 챙긴 짐까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한 꼼꼼함을 보였다.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꽃 작품과 글을 엮는 <꽃편지>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과 함께 원고 작업을 했다. 매주 5개의 이야기, 총 60개의 이야기를 내 안에서 끌어냈다. 일이었기에 가능했다. <꽃편지> 프로젝트 덕분에 내 안에 떠돌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글로 기록했다. 노트북이 망가져 모든 기록이 사라져 버렸던 2021년의 어느 날, 혹시나 하고 찾아간 Leposy의 블로그. '감사합니다' 아직 글들이 남아있었다. 내겐 소중한 이야기들을 한 편씩 옮겨 담는다.


[출처] https://blog.naver.com/leposy/220912996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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