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mma Jul 26. 2023

내 욕구를 말하면 내 마음이 편안할까?

참을 수 없는 불편함


여러 강연과 수업 그리고 책에서 배운 내용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참기만 하는 관계는 결코 좋은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욕구를 드러내고 그것을 조율할 수 있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다.


 


다소 불편할지라도 중요한 말을 상대방에게 표현할 수있는 용기가 꼭 필요하다. 나의 좌절된 욕구를 관찰하고 그것을 스스로 표현하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삶은 관계가 전부이고 관계는 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각각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욕구가 다 다르고 그것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 OK.'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관찰하며 내 욕구에 집중하는 훈련을 조금씩 해오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도 힘들었고 욕구나 본심까지 내려가는데 시간도 오래걸렸다. 하지만 하나씩 찾아지기 시작하더니 퍼즐이 맞춰지듯


아하, 그랬구나


라는 모먼트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근데 나의 어려움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래 내가 저 사람때문에 이런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고 나도 배려와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도 알겠어. 근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내가 이걸 표현하면 저 사람도 분명 불편해질 건데. 관계가 어색해지고 결국엔 멀어지면 어쩌지.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두려움. 사람들이 날 싫어할꺼야.

이렇게 나의 자동적 생각들은 나의 핵심신념들과 맞물려 왜곡된 생각들로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를 위해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의 다른 자아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우리가 표현을 하는 방법에도 관계를 파국으로 가지고 가는 방법만 있는게 아니라 건강하고 발전적인 여러가지 많은 방법이 있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배운대로 해보려 노력했다.


일단 말하기 전 여유 확보하기.

상대의 욕구도 알아주고 나의 욕구도 말하면서 부탁할때는 긍정의 언어로 하라.

한번에 한가지만 부탁하며 구체적으로 실행이 가능한 선에서 제안하고 상대의 의견도 묻기.


그래, 이제 기술적인 부분은 알았으니 실전에서 이걸 써먹을 기회가 오면 한번 해보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좀 불편해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우리 모임인원 중 한명의 지인이다. 그 친구가 싫은 건 아니지만 낯설기도 하고 나랑 성격이 많이 달라서 약간 기가 빨린달까? 나 빼고는 그 친구를 환영하기 때문에 나만

참으면 아무 문제될게 없는 분위기. 바로 그 상황에서 내가 한 말이다.


"그 친구가 우리 모임에 오니깐 사실 내가 좀 불편했어.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서 내가 좀 편했는데 다시

온다고 하니 좀 불편하네. 그 친구를 연속으로 만나니깐 기빨리고 나중에는 목소리만 들어도 피곤했어. 그

친구가 싫은 건 아닌데 내가 피곤한 날에는 더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 그 친구 자체가 싫은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가끔씩 만나는 건 나도 괜찮아."


(여유확보 부족.. 상대의 욕구를 알아주는 말은 못했다... 구체적인 행동언어로 부탁하지 못했다...)



상대가 나에게 한 이야기

"너가 불편하다고 하니깐 정말 미안해. 내가 널 불편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네. 오늘은 이미 약속을 해버려서 어쩔수가 없지만 다음부터는 최대한 자제하고 만남은 줄여보도록 할께. "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얘기하고 이해받으니깐 내 마음도 풀렸어. 오늘 만나도 좋아 괜찮아. 고마워."


이렇게 대화는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에 뭔가 알수없는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불편한 감정이 밀려오니 그 상대와 대화하는것도 불편해지고 관계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자신이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받길 원하면서 -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그 사람이 변화되기를 바라는게

혹여 그 사람의 욕구를 내가 못하게 막은 건 아닐까. 내가 그 사람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건 아닐까.

이렇게 존재로 다시 가지고 오기 시작하니 나의 두려움과 불편함은 더욱 더 커져만 갔다.

(내가 거절을 내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 이것 또한 알아차림)


나와 가까운 사람이고 그 사람이 평소 거절을 잘 안하는 사람이란걸 알기에

그 사람도 그 사람의 욕구가 있고 거절하고 싶은데 또는 조율하고 싶은데 나를 위해 참은건 아닐까.

이게 정말 건강한 관계가 되는 길일까?

배려하고 양보하고 욕구를 내비치며 의견을 조율하는것과 힘의 세기에 의해 한 사람은 참고 억지로 맞춰주기만 하는 관계는 어떻게 구분하는 걸까?


수많은 물음표와 불편한 감정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이미 오래전 일인데도 나는 이 감정이 계속 나의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 내가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도 표현하지 못하는데는 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안다.


첫째는, 이 사람이 이걸 거절했을때 나의 존재까지 거절을 당하는 기분때문에.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그냥 내가 하고 말지. 라며 참곤했다. 절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오히려 안좋게 생각했다. 분명히 자기혼자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상대방에게 부탁하고 귀찮게 하지? 이게 나의 자동적 생각)


그렇게 내 감정은 곪아터지고 그 화가 상대를 향하게 될때는 관계를 망치게 만들어버리고 (회피를 하거나 비난섞인 말로 상대를 공격) 그 화가 나를 향할때는 우울과 분노로 나를 자책하고 괴롭혔다.


둘째는, 이렇게 자기 욕구를 말하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내 인식자체가 좋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나는 피하고 싶어진다. 기빨리고 같이 있으면 저 사람 말도 많고 항상 딴지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양육자 및 나와 관계맺었던 사람들 중에 내가 유독 어려워 하는 사람들은 부정어를 많이 쓰거나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긍정어가 아닐바에는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내 욕구를 표현한다는 것은 일단 상대가 부탁한 상황에 대해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고 내가 원하는 욕구와 상대의 욕구를 드러내놓고 서로 조율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무조건 예쓰를 하거나 피하기만 했기 때문에 내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든과정이다.

내가 이 말해서 저 사람이 날 불편해하고 날 피하면 어떻하지? (내가 상대에게 하던 방식)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게 내 인생의 가장 큰 가치인데 이것과 반하게 되는 것 아닌가?

내가 그토록 바라는 무조건적인 수용이랑 너무 결이 다른것 같고 이렇게 욕구를 내비치고 나면 관계가 어색해지고 눈치보고 서로 어느정도 거리가 생기는게 두렵기도 하고.


여기서 내가 구분해야 할 것은

건강한 자기주장과

내 욕구만을 최우선으로 두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

이 두개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참기만 하는 관계, 그래서 곪아 터지는 관계. 정말나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랑이 내가 그런 마음으로 자기를 위해 그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걸 정말 좋아할까? 고마워할까? 너를 위해서 내 욕구는 제쳐두고 내가 이렇게 참고 희생하고 상대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관계를 그 사람도 정말 원할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본인의 감정이나 욕구를 무시하고 나를 위해서YES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절대로 원하지 않을것이란 점.


아직도 나는 그 불편한 감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불편한 감정이지만 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

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꼭 느껴야할 불편함 이란걸 알고 있다.


그래서 용기내서 오늘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나의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고 내 좌절된 욕구가 무엇인지 깊게 탐색하고 그것을 적당한 타이밍에 건강한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연습. 나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데는 나만의 히스토리가 있겠지. 내가 겪은 경험들로 만들어진 나의 신념들과 왜곡된 생각들. 이것들을 관찰하며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며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 과정 자체는 정말 경이롭다. 하나씩 관찰하고 훈련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곳에서 자유를 느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를 믿는 힘이 조금씩 자라남을 느낀다.















이전 06화 나를 증명하는 방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