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mma Aug 18. 2023

나에게 직업이란, 그리고 퇴사하고 싶은 이유

존재감과 연결 결국엔 사랑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한지 만 9년이다. 내 일은 굉장히 단조롭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주어진 업무를 하고 매일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업무 자체가 버겁지 않은점은 월루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처음 3년은 굉장히 좋았다.



월급은 적어도 나만의 시간이 있고 워라밸이 확실히 지켜지는 이 일이 좋았다. 딱히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었지만 원래 직장인이 월급받으려고 출근하는거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으랴 라고 생각하며 다녔다. 이후 3년은 다른 걸 해보고 싶어서 이것 저것 배우러 다녔다.


하지만 다 취미 그 언저리에서 그쳤지 그게 ‘이직’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내 소비패턴은 부모님집에 얹혀사는 상황이라 대출금도 없는 상태며 여행이나 자기계발하는것을 제외하고는 큰 돈 나갈일이 없기 때문에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도 저축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니 그럭저럭 살 만했다.




그 이후 3년은 코로나가 왔다.




정말 3년 전쯤에는 이직을 못하는 상황이면 일단 관두고 여행이나 다녀와서 생각하자 라는 마음이었다. 근데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이게 또 할만하고 버텨지더라. 주1~2회 출근하고 모든게 다 재택으로 전환되다보니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게 감사해지고 재택근무 안되는 회사들을 보며 일단 이 상황이 끝나고 지켜보자로 바꼈다. 그렇게 내가 가진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다 보니 이 환경에 만족하며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현재. 나는 또 퇴사를 언제 해야하나. 나의 다음 직업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 또는 '직업' 이라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대상이다. 첫째로 생계를 유지시켜준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중요하고 이 일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정의된다는 면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중요하다.


자기소개를 할때도 우리는 흔히 내가 어떤일을 하느냐로 나를 소개하기 마련이다.

'저는 무직이예요' 이러면 내 존재 가치 또한  '무(無)' 인 것 같이 느껴진다. 나는 취업준비 기간이 꽤 길었고 구인 사이트에 몇 백개씩 올라오는 일자리에 내가 원하는 포지션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를 원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고통스러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언컨대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졸업 후 취준시절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나는 타이틀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이게 없으면 너무나도 불안하고 나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두려움이 있다. 타인이 보는 내가 아니라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다.

성적=나, 직업= 나 인셈.


그런 내가 왜 퇴사를 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서 내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어서 였을 것이다. 워라밸이 확실히 존재하면 좋지 않냐고 말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아도 내가 하는 역할이 그것밖에 안되니 더 받아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 존재가 드러나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지만 내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를 드러내는 일이 더욱 더 어려워 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 빼고 다른 동료들은 다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정당한(?) 급여를 받는 느낌에 내가 선뜻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겁이 난다.


그리고 남을 위한 일이 아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그것을 잘하도록 노력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오는 것 같다. 그 일을 소명 삼아 거기서 내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짐을 느낀다. 이런걸 덕업일치라고 할까. 요즘엔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내가 여기에 결핍이 무척이나 크다라는 걸 느낀다.  

(하지만 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면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도 많이 듣긴 했다 ;;; 암튼 ;;;)


무엇보다 나는 맨날 말하던 쥐꼬리만한 월급이나 출퇴근시간이 긴 것 등이 아니라 여기서 내 존재감이 없어서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가 정말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면 이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내가 정말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일이면 사실 나는 급여나 거리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내 다음 직업을 결정하기가 참 어렵다. 아무회사나 들어가고 싶은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나의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입는 그런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근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떤걸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그래서 이렇게 계속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무엇보다 내 자신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은 타인과의 관계를 잘 지내기 위해 항상 노력해 왔다면 이제 나는 내 자신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되고 싶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이 감정은 무엇인지 나의 욕구는 무엇인지 그래서 결국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가 받았던 상처로부터 회복되어 두려움을 넘어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나답게 사는 삶.


아직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채 오늘도 구인사이트를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유럽여행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잠시 로망에 젖는다. 그러다 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의식의 흐름대로 갑자기 영어공부를 한다.


나도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며 소망이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내가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생계의 위협 뿐만 아니라 존재의 뿌리까지 흔들릴까?

나라는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올라오는 두려움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그 두려움과 불안함과 오늘도 나는 함께 한다. 그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루 하루 해내며 그런 나를 바라보고 안아준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고통을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런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