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는 시간.
그동안 마음이 무척이나 조급했다.
뭔가 할건 많은데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떤게 우선순위인지도 모르겠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 또는 좋아보이는 것은
하나씩 다 건드려보며 이게 정말 내 '결'과 맞는지 그 색깔을 찾기위해
고군분투 하다보니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지쳐갔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나답게 내 삶을 걸어나가고자 다짐했지만
그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2023년이 시작되면서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Love the life you live.
Live the life you love.
지금의 삶을 사랑할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 것
-Bob Marley-
이런 삶을 살고 싶었다. 아마도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며 견디고 애써야 하는 삶이 아니라,
기꺼이 나를 위해서 매순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다짐과는 다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와 공간을 스스로에게주지 못했던것 같다. 무엇인가를 해내고 성과가 있는것에 집착하며 그렇게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안에 나를우겨넣어 거기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애썼던 것 같다. 하나가 끝나면 그 공간을 채울 다른 프로젝트에 나를 투입시켰다. 휴식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매일 매일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끝없는 불안함.
'지금 아니면 안돼'
도대체 뭐가 안된다는거지?
지금 이 경험을 하지 않으면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거지?
나중에 돌이켜봤을때 후회와 아쉬움이 나를 오래도록 괴롭히는게 힘들었을까?
잠시 멈추고 나니 이런 물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때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꽤 있었다.
갖고 싶었던 것, 배우고 싶었던 것 등등
어릴 때 경제적 상황이 좋지 못했고 엄격한 기준으로 칭찬이나 격려의 경험이 적었던 나는
그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항상 노력했지만 스스로가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나는 충분하지 않아. 더 잘해야해. 더 노력해야해.
이런 신념들은 어느덧 나의 뿌리깊은 성격으로 자리잡아 거부당하는게 두려워 조그만한 갈등상황에도 먼저 잠수를 타고 관계를 단절시키곤 했다.
누구보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했지만
그 누구와도 깊게 연결된 관계의 경험은 현저하게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 중에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은
너로 이미 충분해.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워.
이런 말을 해줄때면 요동치던 내 마음은 이내 곧 평온해지곤 한다.
경험이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돈으로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웬만하면 나도 한 살이라도 어릴때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멀리 안가본곳으로 여행을 가려 하고
안해본 활동에 나를 노출시켜 낯선 환경에 나를 불쑥 집어넣어 보기도 한다.
경험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맞다.
하지만 모든지 '과유불급'은 해롭다.
라인홀드 니버의 유명한 기도문이 있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주소서.
최근에 제주도에서 일주일동안 지내면서
내가 그동안 매일 매일 해오던것을 강제로 멈추게 되었다. 스케줄표에 해야할 일들이 항상 빼곡하게 적혀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매우 긴급하거나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것들은 아니다.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려했던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가치가 떨어지거나 나의 존재감이 없어질까봐 불안했던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무능하거나 못난 사람이 되지도 않았다.
분주했던 마음에는 어느새 고요함이 찾아왔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내 마음속에서 더욱 더 선명하게 올라왔고 그것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용기와 에너지가 생겨났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그렇게 살아도 꽤나 좋구나 라는 느낌도 받았다.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한발짝 물러나보니 나라는 사람 꽤 믿음직스럽구나.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구나.
관대하게 나를 비추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잠시 멈추고 제한을 풀고 나니 내가 원하는 것들이 자기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내 마음을 꽉 채웠던 것들은 나의 주체적인 선택들로 인해 하나 둘씩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 공간에 내가 원하는 욕구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그것은 내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 시작했다. 이유없이 지치지도 않았고 신경질이 많이 나지 않았다. 억울하거나 조바심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에 기꺼이 한 발짝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제자리를 찾은 듯한 이 안락함과 평온함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