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심판자.
며칠전부터 억울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기 감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을 볼 때
서로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을 볼 때
사람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애정있고 편안한 관계를 볼 때
어느 분야에서 본인의 존재를 잘 드러내는 사람을 볼 때
상황마다 자연스럽게 자기표현하고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을 볼 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볼때 질투의 감정도 올라오지만 스스로가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칭찬일기도 쓰고 명상도 하며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메세지를 스스로에게 주려 노력하지만 그 마저도 '노력'해서 얻어져야 하는 '무엇'임에 이내 피로감이 올라온다. 나에게 없는 것에만 깊게 몰두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를 드러내는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움츠러들곤 한다.
지금도 나는 매우 많은 '해야 한다'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직업을 바꾸고 싶어하고 미뤄뒀던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하고 내집마련도 하고 싶다. 이런 욕구들이 자기애가 넘쳐 나를 좀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서 그러는걸까?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이
반드시 '해야한다' 라는게 아니라
나는 나를 위해 이 모든것들을 '선택한다.'
라고 바꼈으면 좋겠는데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너무 지쳐버렸다.
무엇인가를 시도조차 하기 전에.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흘러가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비교했을때 너무 찌질한 '나'이기에
공식적으로 나를 어디 시장에 내놓기 창피하기 때문에
나를 어서 빨리 발전시키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것일까?
슬프게도 나는 후자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럼 대체 이런 결정은 누가 하는거고 이런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거지?
수많은 자극이 있는 환경 속에서 과연 어떤것이 옳다고 믿고 선택해야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것을 했을 때 내가 행복할거란 확신이 있지만 그것을 진행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게 정말 나에게 좋은걸까?
일주일 단위로 해야할 목록을 적을때도 나는 부지런히내가 해야하는 것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중에 내가 이미 한 것들은 보이지도 않고 하지 않은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내가 뭘 더 해야하지? 내가 놓친것은 무엇이지?
처음에는 하나 둘씩 체크박스를 없애가는게 뿌듯했지만 지금은 몸도 마음도 지쳐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을 이룬 사람, ~을 한 사람' 이렇게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토록 원하던 being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doing으로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을.
이 고통을 주는 사람이 나라면
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도 바로 나.
KEY는 바로 나에게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나라는 사람이 정의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나는 무엇인가를 하며 나를 만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같은 시선으로 타인들을 보기 시작했다. 타이틀에 집작하고 금방 판단해버리곤 한다. 그냥 거기에 있어줘서, 그저 거기에 존재해줘서 그 사람이 보이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것.
많은 물음표와 숨막히는 상황에서도 한 가지 희망은
지금 이 모든것을 온전히 느끼고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점.
'아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만 내 존재가 뚜렷해진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저 사람이 가진 직업을 보고 어떤 걸 이뤘겠구나 판단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나에 대해 이런게 부족해 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채워주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저 사람이 가진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것을 비교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져 존재로서 나와 멀어지고 있구나.'
이렇게 관찰하고 알아차리게 되면
나에 대한 아릿한 연민이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신중하게 선택해 나에게 말해준다. 그 말을 듣는 나의 자아는 내가 좀더 나답게 살기위해 어떤것을 선택해야할지 나에게 알려준다. 나는 그 선택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자극이 만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를 잃어버리기 너무나도 쉬운 것 같다. 많이 흔들리고 헤매며 도저히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모른채 상처투성이로 매일 매일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라는 사람을 잘 양육하기에 척박한 삶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흔들려도 괜찮고 헷갈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우리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우리 안에 이미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실현시킬 힘이 있다. 많은 유혹과 방해가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로 가장 나답게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덜 조급하게 생각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쉬어가도 좋으니 다치지만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