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한번 만난 적이 있다 로마에 유학갔다 와서 위암으로
죽기 얼마 전이었다 그 후 그의 그림이 지금까지 내 집에
걸려 있다 삼십 년도 지났다 오늘도 그의 그림을 본다 그의
생애를 말하는 건 붉은 색과 검은 색 그리고 어디를 가고
있는 어린 아이, 사물의 선을 허물고 덮쳐오는 검은 색 구름은
서른여섯 살의 생을 마감한 위암 세포들,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색은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의 찢어진
눈물, 어두웠던 과거 그리고 그 속에서 마구 튀쳐 나오는
붉은 색, 껴안고 싶고 부비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오늘도 길 따라 고향으로 가고 있는 동심이다
갑자기 산다는 것에 북받치게 하는 색깔들, 나의 생애를
말하는 색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