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사실 이 책의 원제목은 『학문의 발견』입니다. 발견이나 즐거움이나 그게 그거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원저가 1982년에 나왔으니까 36년 전이고 한국어판도 그보다 10년 뒤인 1992년, 26년 전에 발행되었습니다. 책 자체가 오래 되어서 처음에는 너무 ‘올드’하지 않나 하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제 자신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고 자신을 겸손하게 평가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의 수학적 머리만은 우수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더군다나 수학의 창조적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과 나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저의 생각을 끌어당기는 몇 가지의 테마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학문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우지 않고서는 머리 속에 아무런 정보가 들어가 있지 않으므로 도무지 그 어떤 결과를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배우면서 다음에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당연히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심사숙고를 합니다. 그 다음에 창조의 단계에서 수학자라면 자신의 새로운 수학적 이론을 논문으로 만들어 냅니다. 시인은 시를 쓰고 평범한 직장인은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가운데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어떤 즐거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비범한 수학자 같으면서도 그가 말하는 내용은 참으로 평범하기 끝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장점으로 끈기를 말합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그것을 놓치는 일이 없이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맺을 때까지 묵묵히 따라갑니다. 이것이 참으로 말이 쉽지 잘 할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인생을 훌쩍 많이 지나왔지만 돌이켜 보면 진정으로 끈기 있게 무엇인가 추구해 왔는가 하고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학문의 즐거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목표 자체도 중요하지만 목표가 자신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에너지가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에게 맞는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영어식으로 말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제 인생을 회상해 보아도 뚜렷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저의 지금의 상황에 적합한 목표를 세우려고 구상을 하고 실천을 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진척이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소위 십인십색입니다. 출신의 처지가 다 다릅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소생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각자가 특유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아이큐’의 우열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한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후천적으로 노력파도 있을 수도 있고 게으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다종다양한 각자가 70년이고 80년이란 시간을 살아갑니다. 아무런 의지도 갖지 아니하고 그저 닥치는 대로 자신의 생의 몫을 다하고 가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로일 겁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으로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배우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인생을 산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인생의 보람을 창조하면서 죽을 때는 나름 ‘나는 그런대로 행복한 한 생을 살았노라’고 말하면서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부자도 저보다 머리가 탁월한 사람도 부러워할 것도 없이 저만의 보람을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제가 가장 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짐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 동의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