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Sep 19. 2024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3

  우리 개에게는 서열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상명하복을 잘 이행하도록 그렇게 유전자가 구성이 되어 있나 봅니다. 그것까지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고요. 나도 태어나고 보니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니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그런 자연 법칙을 거스르겠어요. 대세에 순응해서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의 지혜라면 지혜겠지요. 


  지금은 그런대로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지만 처음에는 저도 꽤나 혼란을 겪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저야 어렸지만 그래도 동료 개들에게 들은 풍월이 있어서 주인 남자가 이 집에서 서열이 제일번이라고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그걸 빨리 파악을 해야 저도 살아가는데 스트레스 안 받고 세상 풍조 얹혀서 나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지내보니 뭔가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당연히 남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주도권을 발휘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를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우리 개판에는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판에는 돈이 핵심 포인트가 아닙니까. 경제력을 쥐고 있는 쪽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간들이 사는 나라에서도 같은 이치가 작동한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개치고는 굉장히 유식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저 주인이 보는 신문을 어깨 너머로 본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내가 무슨 문자를 트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 주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서 대충 짐작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뭐 그렇게 깊이가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식이 쌓이더라고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삼천포로 빠졌는데―삼천포라는 말을 이런 데 쓰면 그 지역 주민들은 분노한다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디다. 그저 비유로 말하겠거니 하고 치면 그뿐이 아닌가요―아무리 보아도 이 집 여주인이 경제권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돈이 들어오면 파란 지폐를 주로 그분이 세고 은행 통장을 관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 주인은 간간히 용돈 오만 원 타는 것 외는 별로 돈에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것은 외양만이 그렇다는 말이고 실제로 속내는 나야 알 수는 없지요. 


  아무튼 나의 오랜 관찰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집의 서열 일번은 여자 주인이라는 데로 갔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행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녁에 여자 주인과 남자 주인이 같이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내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나는 여자 주인에게로 나의 온 힘을 다해 돌진하면서 기운차게 꼬리를 흔들어야 합니다. 간간히 기쁘다는 신음소리도 같이 끼어 넣어야 더 효과가 있겠지요. 앞발을 주인 여자에게 들어서 깡충깡충 뛰면 그대로 반응이 와서 나를 주인의 품으로 안고 갑니다. 그때가 사실 나의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이렇게 생명체끼리 교감한다는 것은 생명체가 누려야 할 희열이라는 것을 알만한 자는 다 알 것입니다.


  이때 주인 남자의 표정이 좀 떨떠름하다는 것을 나는 곁눈질을 하면서 느끼지만 이것은 나의 어쩔 수 없는 처세술이므로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체 합니다. 주인 남자는 자신이 유령이라도 된 것인지 자신의 존재를 전혀 인정해 주지 않는 개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물론 그것이 안 되어서 한참 뜸을 들인 후에 주인 남자에게로 갑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면피용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긴장감도 기쁨도 별 없이 형식적으로 어르다가 헤어집니다. 그러면 나는 옳다구나 하고 주인 여자에게 뛰어가서 못다 나눈 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내가 이 집안에서는 서열 제이번을 차지하고 살아야 한다고 나를 격려합니다만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때로는 나의 서열이 곤두박질 치는 때가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얘기할게요. 



작가의 이전글 아이코의 견생관(犬生觀)-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