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게 하는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 자체이다’
이 책은 미국 원본이 2001년에 출판되었고 한국 번역본은 2014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은 2014년 8월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책 제목입니다. 원본은 『Thunder and Lightning: Cracking Open the Writer’s Craft』인데 영어 실력이 없는 제가 억지로 해석한다면 ‘천둥 번개: 그 균열이 작가의 기술을 연다’라는 것인데 이걸 왜 ‘버리는 글쓰기’라고 의역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안 갑니다.
워크숍에 참가한 어떤 학생이 글쓰기 해서 얼마 버느냐고 물으니까 나탈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출세도 없어! 장담도 못해! 자격증도 없어! 보상도 없어!” 나탈리는 ‘결과물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기는 합니다. 결국 글쓰기를 위해서는 그런 세상의 보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이런 제목을 선택한 것 같으나 이 책의 내용이 이게 핵심일까는 약간 의심이 갑니다.
이번에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들을 다시 복습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조금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전에는 막연히 나탈리의 글쓰기 책은 글쓰는 실력을 향상시켜주는 책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선(禪)에 대해 이야기했던 이유도 나변(那邊)에 있었습니다.
나탈리의 글쓰기는 지면(紙面)에 쓰여진 표면적 결과보다는 나탈리의 내면에 있는 생각에 도달하고―손을 쉬지 말고 움직여라는 말이 이것입니다만―그것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 내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알아가서 자신의 본질에 닿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녀가 평생 수련한 선의 길과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나탈리의 말을 직접 들어봅니다. “명상과 글쓰기는 내면으로 향하는 행동이며 진정한 자아를 만나게 해주는 형식을 제공한다.” “나의 목적은 단 한 가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 하나의 행위를 통해서만 내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활짝 열렸다. 나는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현실 속에 살고 있었다.” “내가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것은 선언이며 성명이다. 글쓰기는 진정한 영적인 길이며, 전정한 선의 방식이다. 글쓰기는 당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누구도 속일 수 없고, 특히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 당신은 실천하는 사람인 동시에 실천이 되는 사람이며, 세속적인 사람이자 수도승이다. 내면과 외면을 합칠 수 있는 기회이며, 어차피 둘은 같은 것이므로 둘이 별개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위대한 도전, 위대한 훈련이다. 크나큰 길이다.”
책의 내용은 학문적으로 체계 있게 구성된 것은 아니고 글쓰기에 대한 나탈리의 생각을 나열한 것이기에 복잡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탈리의 ‘손을 멈추지 않고 쓴다’는 기본기가 갖추어지면 글쓰기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각론 부분을 따로 모아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나탈리가 평소에 써놓았던 생각들, 혹은 에피소드들을 기록해 두었던 것을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이들 일화들을 서너 개 골라 옮겨 적은 다음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주제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변죽을 울리고는 거기서부터 풀어나갑니다. 그녀의 책들이 대부분 이런 전개가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글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을 적으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즉 나탈리가 앉아 있는 곳, 책상에 놓인 것, 입고 있는 옷,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 바깥 날씨 등을 서술하면서 나아갑니다.
세 번째는 나탈리가 아는 지명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누구나 아는 지명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나탈리의 경우는 므완자, 세렝게티, 눙궤, 몰로, 나쿠루…. 어떤 지명일지라도 좋으니 운항일지를 쓰듯이 써보라고 조언합니다. 그러고는 출발해서 239페이지까지 갔습니다. 처음부터 주제를 파악한 것이 아니라 쓰면서 주제가 파악되어 온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는 세부묘사입니다. 나탈리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만약 당신이 사물의 과거, 현재의 진정한 모습을 세부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다면 당신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세부묘사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 장소와 시간의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다섯 번째는 추상적 기억이 아니라 감각의 기억을 살립니다. 예를 들어 ‘나의 어린 시절은 슬펐다’라고 말하면 추상적 기억이 됩니다.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 부엌에서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 주근깨가 가득한 창백한 얼굴에 대비되는 새빨간 스웨터,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코듀로이 천의 올록볼록한 감촉, 울면서 먹었던 사과의 맛…’, 그런 감각들은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과거를 회상할 때 끝도 형태도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때 ‘물리적 구조’에 의해 생각에 틀을 잡습니다. 예를 들어 나탈리의 여섯 살, 열두 살의 이 두 해를 깊이 파고 들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다 나타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는 처음부터 본론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고 있습니다. 나탈리의 가타키리 로슈와의 관계에 대한 책 『길고 조용한 고속도로』를 쓰고 싶었지만 그녀는 첫 장부터 로슈 선사를 소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얘기를 쓰다가 마침내 100페이지에 이르러 일본인이고 불교 신자인 나탈리 인생의 스승을 만나게 해줍니다.
여덟 번째는 테드 솔로타로프는 회고록 『진실은 갑자기 들이닥친다』의 출판회에서 책을 쓴 과정을 말해 줍니다. 솔로타로프는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고 자신의 책 앞부분 300페이지를 몽땅 날려버리고 다시 씁니다. 나탈리는 ‘항상 자신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버리라. 글을 쓰고,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한 걸음 물러섰다가, 믿을 만한 동료작가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다시 몸을 던져라. 이런 균형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아홉 번째는 레슬리 마몬 실코(1948~, 소설가 『의식(ceremony)』의 저자)의 섹스 장면 묘사를 소개하는데 사실 저로서는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이런 묘사의 방식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치환방식인데 넓게는 은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나탈리가 했던 식으로 쓰기가 쉽습니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하지만 레슬리 마몬 실코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가 길을 잃고 헤매기가 두려워 말을 속으로 되풀이하며 흔적을 남겼다. ‘이것은 그녀의 짭잘한 갈색 가슴을 맛보는 내 입이고, 이것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다.’ 그가 그녀에게 더 깊숙이 들어가니 강바닥의 부드러운 모래가 발을 따뜻하게 둘러싸고 따뜻하고 뿌연 물이 발목을 꼬옥 감쌌다.
“그가 절정을 느낄 때, 가파른 강기슭이 폭풍우를 맞듯 모든 것이 느슨하게 풀리더니 이내 무너져 버렸다.”
열 번째 마지막입니다. 시각예술처럼 글쓰기입니다. 쉽게 말해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찎었다고 생각하고 그 사진의 그림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나탈리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사건의 어떤 장면을 사진이라고 연상해 보자.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되었다는 말을 아내에게 하는 순간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을 묘사하라. “그녀는 충격을 받고 화가 났다.” 혹은 “그녀는 남편과 함께 안타까워했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줘야 한다. 사진 속의 여인의 얼굴 표정을 잘 살펴 보라.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반지 낀 손을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로 뻗는다. 눈은 커다래졌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법칙이 아니라 하나의 예로써 자신이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글쓰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이것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참고하여 자신이 취사선택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