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창조론의 대척점에 있나
순전히 내용보다는 제목에 이끌려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니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지난날을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선택지는 많았고 그 가운데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도 있었고 그야말로 플로리안 아이그너 말처럼 ‘우연히’ 그렇게 결정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 것을 지금 후회한다 안 한다 차원을 떠나서 지금의 저의 위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것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습니다. 그냥 우연히 어떤 일이 생겨났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 책을 읽어보면 양자물리학의 이론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우선 그것은 차치하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한 행동은 어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인과율에 얽매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필연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난 우연 그것이 바로 원인이 되어 다음의 필연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차를 타고 가다가 오랜 친구를 만나서 잠깐 차를 세우고 이야기하다가 집에 돌아오니 어쩌면 빨리 왔으면 없었을 주자할 자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그 장소에서 차를 몰고 직장을 갔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 자리에 주차를 못하고 다른 곳에서 주차하고 다음 날 차를 운전했다면 시간상으로 제 뒤에서 어떤 술 먹은 친구가 차를 들이받아 대형사고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모든 것이 인과율로 거미줄 같이 얽혀서 살아갑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하여 부부관계를 맺음으로써 저라는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필연이지만 이 필연 전에는 우연이 개입했습니다. 하나의 난자에 수많은 정자 중에 우연히 하나의 정자와 수정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가로세로로 직조되어 작동되어 갑니다. 막연한 제 감으로는 필연과 우연이 6대 4정도로 서로 엮여가는 건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양자역학 이론을 설명하는 가운데 우연을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 없으니 이해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입자가 둘 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인 중첩 상태로 있다가 측정이 된 순간 하나는 플러스고 다른 하나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라플라스 악마라든가, 쉬뢰딩거 고양이라든가 하는 말은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룰렛 게임이나 로또 게임이나 또는 마술가에서의 우연에 대해 설명하여 약간은 책의 주제로부터 떠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양자물리학자라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 젊어보였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이고 유물론자이며 또한 진화론자임을 책을 읽음으로써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개인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신념이니 왈가왈부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비록 기독교 신자이지만 진화론도 저는 과학적이라고 많이 수긍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이 시작하는 부분의 설명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항상 진화론자들이 설명하는데 한 가지 저어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들은 진화론을 창조론의 대척점에 놓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도 진화하는 과정이 과학적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진화론이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그들의 설명이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길지만 플로리안 아이그너의 말을 인용합니다.
「진화의 역사를 분자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도 있다. 언젠가 해양에서 아주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닌 분자가 만들어졌다. 자기 복제가 가능한 것이었다. 각 분자의 구성 요소에 우연히 원시 수프 속을 떠다니던 적합한 구성 요소들이 달라붙었다. 우리 DNA의 전신인 분자 자체는 동일한 유형의 분자를 위한 본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 초자연적인 창조과정이나 신비주의적 인 생명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이것은 그저 화학일 뿐이다.
분자의 후손들은 복제를 계속하고 그 숫자는 필연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우연히 해양을 헤 엄쳐 다니던 적합한 분자 구성 요소의 숫자는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자기 복제를 한 분자들 사이에서 화학적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 이빨과 발톱을 사용한 싸움은 아니 었다. 이런 것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그것은 우연과 가능성의 싸움이었다.
아주 효율적으로 복제되는 분자들만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분자들은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백질, 보호해 주는 외피, 그리고 세포와 같이 다른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오늘날 생명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우주가 창조되면서 분자들이 원시 수프 속을 떠다니면서 분자들이 이리붙고 저리 붙고 하다가 우연히 만들다보니 자기들도 알 수 없는 복제할 수 있는 분자들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의인법을 써서 설명합니다. 그것은 정말 그럴 경우의 수가 거의 희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 정말 영겁 같은 시간을 주어서 그것이 만들어졌다고 합시다. 복제를 한다는 것은 그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과는 달리 무언가 의지가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만 이것도 플로리안 아이그너 말을 믿기로 합니다.
‘그러나 분자들은 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백질, 보호해 주는 외피, 그리고 세포와 같이 다른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오늘날 생명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라는 부분에서는 도저히 그냥 그의 권위에 굴복하여 동의하기에는 너무 문제점이 많아 보입니다. 복제할 수 있는 화학분자들이 우연히 단백질을, 세포핵과 미토콘드리와 세포막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정말 분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의 극한까지 가지만 그래도 그런 확률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어서 용인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기서 화학분자라는 무생물에서 있어서 움직이고 숨 쉴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생물로 한 순간에 바뀐다는 것은 정말 인정하기가 저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만들어진 다음의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이다라고 저는 수용합니다. 그러나 무생물에서 화학 분자들이 이리저리 결합하다가 우연히 생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저로서는 무리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연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아니 어떤 사람은 지배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누구나 다 각자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런 것을 느낍니다. 그런 우연조차도 무신론자라면 그저 아무런 의지 없이 일어난 것이므로 받아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또 기독교 신자라면 그런 우연조차 하나님의 뜻이라고 순종하려고 합니다. 니체는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말이지만 저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이해는 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각자의 우연 혹은 필연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인생에 대해 후회하거나 환호작약하지 말고 담담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고 애끼라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