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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검은그림자

- 심장을 탐하다

by 만을고옴

이순신이 ‘심장’을 꿰뚫은 물의 기운이 뻗친 검을 빼내자, 붉게 뿜어져 나온 탁한 에너지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괴물의 몸통으로 다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괴물의 상처는 놀랍도록 빠르게 아물었고, 몸체는 더욱 거대하고 불길한 형태로 꿈틀거렸다.

녀석의 붉은 눈빛은 이순신을 향해 불타올랐다.


“젠장, 피가 아니라 독약이었어!”


이순신은 검을 고쳐 잡으며 괴물의 맹렬한 반격에 대비했다.

괴물의 공격은 이전보다 더욱 거칠고 무거워졌다.

온몸의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에너지 파동이 대지를 갈랐고, 솟아오른 바위 촉수들은 마치 살아있는 철퇴처럼 닥쳐왔다.

바로 그때, 홍길동의 뒤에서 번뜩인 검은 그림자는 실체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존재처럼,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리며 그의 의식을 휘저었다.


‘흐릿하다… 온 세상이 흐릿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홍길동의 명민한 두뇌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릴 적, 끝없이 펼쳐진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던, 그러다 결국 모든 길이 막혀버렸던 악몽과도 같은 기억에 갇히는 듯했다.

그의 날카로운 비수는 허공을 가르고, 그의 발걸음은 엇박자를 탔다.

평소 누구보다도 재빠르고 명민했던 그였기에, 이런 혼란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분석해야 한다. 이 그림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나를 흔드는가?!'


그의 정신은 그림자의 파고듦에 대항하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홍길동! 정신 차려!”


이순신이 소리쳤지만, 당장 괴물의 맹공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임꺽정은 이순신이 괴물을 상대하는 동안, 주변으로 밀려오는 잔해들과 촉수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는 홍길동의 이상을 감지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빌어먹을 그림자 같으니!”


임꺽정은 철퇴를 바닥에 찍어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홍길동의 시야를 확보하려 애썼다.

이순신은 싸움 와중에도 번뜩이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검은 안개’ 리더의 마지막 중얼거림, ‘피를 원한다’, 그리고 지금 괴물이 뿜어내는 붉은 에너지를 다시 흡수하며 강해지는 현상.

저것은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괴물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녀석을 더욱 강력한 존재로 변모시키는 ‘고대의 촉매’였다.

마치 ‘심장’이 잠들어 있던 ‘신’을 깨우는 제물이라도 되는 모양새였다.

홍길동의 정신을 침식하던 그림자는 그의 분석 능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그의 기억 속에 파고들어 그의 가장 깊은 불안을 건드리고 있었다.

홍길동은 가까스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비수를 겨누었지만, 그림자는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그의 손을 스쳤다.

그러다 문득, 그의 감각이 둔화되는 순간, 섬 전체의 미묘한 에너지 흐름이 느껴졌다.

‘그림자는… 심장의 일부다! 정신을 노려 흡수하는… 마치 심장이 바라는 존재의 영혼을 빨아들이려는 것처럼!’ 홍길동의 뇌리에 섬광처럼 깨달음이 스쳤다.


"대장님! 저 그림자는 괴물의 본능이에요! 특정 지능을 가진 존재를 탐색하고 흡수하려는 의도예요! 녀석은 더 많은 에너지를... 영혼을 원하는 겁니다!"


홍길동은 흐려지는 의식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의 말은 이순신의 가설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신의 재림… 피를 원한다… 결국 괴물은 단순히 부수는 존재가 아니었다. 새로운 탄생을 위한 통로였던 것이다.'


이순신은 망설이지 않았다.


"임꺽정! 저 괴물… ‘심장’을 봉인해야 합니다! 단순히 부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야! 녀석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을 막아야 해요!"


이순신은 곧장 괴물의 거대한 몸체 아래, 붉은 에너지가 가장 격렬하게 맥동하는 부위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이곳이야말로 ‘심장’의 동맥과도 같은 곳, ‘피’의 순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었다.

임꺽정은 이순신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번뜩였다.


‘봉인? 부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장의 판단이라면.’


그의 철퇴가 묵직하게 움직이며, 거대한 바위들을 부숴 길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하여 괴물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괴물이 휘두르는 거대한 촉수들을 막아내며, 임꺽정은 스스로 방패가 되어 이순신이 움직일 시간을 벌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지켜야 한다. 동료들을… 그리고 이 땅을.’


이순신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 직접적인 파괴가 아닌 ‘봉인’.

이는 단순한 무력 이상의 섬세한 제어와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검술을 단순히 베고 찌르는 행위를 넘어, 기운을 제어하고 흐름을 묶는 고대의 봉인술과 연결시키려 시도했다.

그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뿜어져 나와 괴물의 붉은 맥동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림자에 시달리던 홍길동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이순신의 행동을 파악했다.


“고대의 봉인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그는 이순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동시에 자신을 옭아매려는 그림자의 흐름을 분석했다.

그림자는 그의 혼란을 먹고 자라는 듯 점점 강해졌지만, 홍길동은 그 속에서 약점을 찾아냈다.

그림자 자체가 심장의 한 부분인 만큼, 심장의 에너지 흐름이 흐트러지는 순간 그림자도 약해질 터였다.

하지만, 괴물의 ‘심장’은 붉은 에너지를 흡수하며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봉인 시도를 알아차린 듯, 섬 전체가 아우성쳤다.

괴물의 몸체에서 새로운 촉수들이 돋아나와 이순신을 향해 맹렬히 돌격했고, 대지는 더욱 거칠게 요동치며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했다.

섬 전체가 자신을 가두려는 봉인에 저항하는 듯했다.

이순신은 고대의 힘과 싸우며 거의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과연 '한반도' 팀은 이 거대한 '심장'을 봉인하고, 섬을 덮친 그림자 속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련지, 그리고 이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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