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부와약초꾼 Oct 15. 2022

재배와 채취 사이

서른이 되던 해인 2013년에 거창의 산과 밭에서 ‘농부와 약초꾼’이란 업을 시작했습니다. 옆지기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산을 타며 일을 배워 왔고, 저는 20대 중반부터 농사를 지어 왔으므로 우리의 만남을 농장 이름으로 정한 것입니다.

 

 농촌에서 가장 평범한 직업이 농부나 약초꾼이지요. 저희도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농부는 땅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어린싹을 키웁니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주 들여다보며 보살펴 주어야 하고 주변의 풀도 제거해야 잘 자랍니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땀을 흘린 수고로움을 정직하게 얻는 기쁨이 상당히 큽니다. 반면에 약초꾼은 이 산과 저 산을 방랑하며 다 자란 결실을 저절로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땀을 흘리며 돌아다니다가 야생의 선물을 마주할 때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아마도 재배와 채취를 모두 하고 있어 그 기쁨이 배가되는 듯합니다. 농사짓기를 하므로 산에 약초가 얼마나 귀한 생명인 줄 잘 알고, 채취를 하므로 농사가 얼마나 고귀한 일인 줄 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살다 보면 지구에 살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써 저절로 자연에 스며들게 됩니다. 


 장군봉, 미녀봉, 보해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굵직한 산으로 둘러싸인 가조면 원천(原川) 마을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농산물의 품질로 농부와 약초꾼의 가치를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우슬 뿌리를 고압세척기로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는 뇌두에 뭉쳐 있는 작은 흙 알갱이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슬 뿌리 중량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번거롭더라도 1차 세척 후 뿌리 절단 작업을 거친 다음에 다시 2차 세척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간편하고 깔끔하게 섭취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시중에서 나와 있는 두충나무껍질은 겉껍질까지 손질되지 않은 채 판매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두충나무의 겉껍질을 일일이 모두 제거한 뒤에 속껍질만을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불순물 등을 제거하기 위해 긁어내는 장비를 개발했습니다. 분명 건강을 위해 섭취하는 약초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 손을 한 번 더 거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좀 더 손질을 거친 다음에 안심하고 드실 수 있도록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유기농과 농산물 우수관리 인증을 받아 소비자들이 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관리하고 철마다 손수 재배하고 채취하는 수십 종의 약초를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그 생산 과정을 공개하고 소통했습니다. 게다가 블로그에 영농일지를 공개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믿고 구입해 주시고 있습니다.


 ‘약(藥)’의 한자에는 본래 ‘치료하다, 사람을 즐겁게(樂) 해 주는 풀(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에 마땅히 그 본연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농부와 약초꾼의 삶의 모토는 ‘일이 삶의 락(樂)’입니다. 유기 재배는 풀을 매는 과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네 발로 기어 다닌다고 할 정도로 고단한 과정을 거치지만 이 또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무리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즐겁고 건강한 기운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창에 와서 직접 재배하고 채취한 약용 작물을 직거래로 판매해 왔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동네에 묵은 밭이었던 1,000평의 땅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임대해 농사짓던 오랜 시간이 모여 말 그대로 경자유전이 되어 제 땅을 마련한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농부에게는 땀 흘려 일하고 먹고 싸고 죽을 땅이 되는 농지의 의미가 상당히 큽니다. 자연을 스승 삼아 저를 먹여 살려 준 땅의 먹이가 되기까지 지역에 뿌리를 굳건히 내릴 것입니다.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죽음을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큰 고생 없이 순하게 죽는 사람들이 뜻밖에도 농부라고 합니다. 저도 그러한 농부들처럼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이전 02화 정착과 유목 사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