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의 범위는 전기장판 크기였다. 더운 여름이 아니고서야 매일을 전기장판 위에서 생활했다.(전원을 켜지 않았을 뿐 더운 여름에도 전기장판 위에서 생활했다.) 내가 살던 집들은 하나같이 얼음장 같았다. 몹시 추운, 맨발로 돌아다닐 수 없는 차가운 바닥이었다. 엄마는 절대로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도시가스가 아닌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집들이었던 터라 돈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였다. 겨울이 되면 내복을 입고 옷을 세겹씩 껴입고 그 위에 밖에서 입기엔 창피한(알 법한 브랜드의 마크가 박혀있지도 않고 현란한 색상을 가진)패딩을 입었다. 등산양말을 신고 수면양말을 덧신었다.
차가운 바닥에서 유일하게 전기장판이 열을 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최대한 전기장판에 납작 엎드려 그 열을 받았다. 하지만 전기장판이 만능은 아니었다. 추운 곳에선 그 열을 온전히 내지 못했다. 따뜻한 곳에서 세기 '3'과 추운 곳에서 세기 '3'은 달랐다. 추운 우리집에서는 숫자 '9'를 넘어 '최고'칸에 열의 세기를 맞춰두어야 했다. 최고라고 적혀 있지만 열기는 최저 같았다.
집안은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놓은 얼굴을 아주 시리게 만들었다. 전기온풍기가 생긴 적이 있었다. 전기세를 상당하게 잡아먹는 녀석이었다. 결국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엄마는 녀석을 창고에 박아두었다. 아빠는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휴대용 난로를 가져왔다. 난로는 작았지만 따뜻했다. 손을 녹일 수 있었다. 가스가 끝나지 않기를, 조금 더 따뜻해주기를 바랐지만 매번 티딕- 틱- 틱- 틱- 소리를 내며 꺼져갔다. 부탄가스는 계속해서 사라져 갔지만 다시 채워 주는 아빠가 있었다.
컴퓨터 앞에도 1인용 전기장판이 놓여있었다. 그곳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게임을 했다. 호호 입김을 불고 허벅지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얼었던 손을 녹였다. 아빠가 난로를 가져온 이후로는 금방 손을 녹일 수 있었다. 집안의 차가운 공기는 내 손만 얼리고 있지 않았다. 친구집에서 받아온 햄스터가 추워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난로를 쬐어주었다. 30분가량 지나니 햄스터가 움직였다. 난로는 햄스터를 살렸다. 내 손도 햄스터도 살리는 작은 난로였다. 전기장판 한쪽 자리를 내어주고 햄스터집을 이불로 감쌌다. 그 작은 목숨과 함께 추운 겨울을 지냈다.
엄마는 전기장판이고 아빠는 난로였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는 안정감을 주는 건 엄마였고,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게 따뜻함을 주는 건 아빠였다. 돈과 관심. 어린아이는 둘 중에 하나가 없으면 안 되었다. 엄마는 미약한 열을 내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버리고, 아빠는 따뜻한 열을 내지만 언제 다시 추위에 떨게 될지 모를 불안감을 안아야 했다. 혹여나 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매일 하던 고민과는 다르게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사라질 수는 있었다.
난로는 깨지고 부서졌다. 난로에 불이 완전히 꺼졌던 날, 그제야 결코 작은 난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영면에 들었다. 그 자체로 고이 타올랐다. 마지막 불길과 함께 또다시 추위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