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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사콜라 Sep 26. 2022

우리는 더 이상 미래에 살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란 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란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보면, 우리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물리 법칙의 세계가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한 엔트로피의 변화가 가져오는 의식의 변화이며 절대적이지도 않고 또한 흐름의 방향조차도 고정되어있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시간이란 개념조차 다분히 개인적 경험일 뿐이고 상대적이다.

인과 법칙이 존재하는 고전 물리학에서의 시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결과는 때로는 원인에 앞서고 방향성조차 무한히 확장한다.


영화 "테넷"에서 다루는 시간의 새로운 모습들,, 엔트로피가 결정하는 단편일 뿐이다.


우리가 미래를 기다리고, 예상하고, 꿈꾸고, 그리는 모든 것은 우리 의식세계 안에 과거라는 경험과 기억이 나의 뇌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내가 그 증인이라고, 나는 과거를 통해 현재에 도달해 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미래라는 게 정말 존재 하기는 하는 걸까?

우리는 단지, 매 순간 변화하는 엔트로피에 따라 관념적 시간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미래에 살지 않는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은 없다.

현재는 과거이자 미래이고 미래이자 과거이다. 

선택이 존재할 뿐이다. 내 선택의 나의 방향을 이끌고 나는 그 선택에 따라 한 발짝 움직였을 뿐이다. 

과거를 거쳐 미래로 걸어가고 있지 않다.

매 순간순간이 연속적 인지도 않다. 순간은 순간을 꼬리 물기 하듯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냥 나는 이곳 내가 창조한 우주 안에 존재할 뿐이다. 


매 순간 내가 존재하는 세상이 곧 현재이고 미래이자 과거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시간을 걱정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하지만, 나의 죽음 이후의 시간, 세상이라는 것 없다.

마치 우리의 우주가 빅뱅 이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북극에 도달한 탐험가가 북극점 위에 서서 더 북쪽은 어디인지 묻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던 세상의 시간을 묻고 방향이 없는 곳에서 방향을 묻는 우문일 뿐이다.


죽음 이후의 시간과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자 방향 없는 세상에 대한 공허한 질문이며 걱정이다.


내 앞의 작은 미래조차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있지 않다. 

존재하지도 않을 미래에서 찾을 순 없다. 그냥, 바로 지금 나의 선택이 매 순간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나는 그곳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미래에, 시간에 매몰되어 사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우주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현재의 행복 찾기에 고군분투 하기에도 우리에겐 시간이(?)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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