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시간과 나아가는 시간
많이 힘든 날들을 보냈다. 내 우울과 불안이 모두에게 전염될까 봐 쉽게 글을 쓰기도,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 일주일만 더 참아보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지겠지. "약에 반응을 잘 하지 않는 환자분들을 보면 어느 순간 확 좋아지더라고요, 00 씨도 그런 날이 올 거예요." 병원에서 3년 전 절망한 우리 엄마에게 희망을 주고자 가볍게 던진 말이다. 엄마는 참고 또 기다렸다. 내가 나아질 어느 날을 위해.
그러다 며칠 전 SNS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차가 막히고, 친구를 기다리고, 영화관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고. 진짜 버려지는 시간은 누굴 미워하는 시간이라고. 수많은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버린 시간은 나아지길 고대하며 희망 없는 삶과 싸우던 시간이 아니다. 그저 나를 미워하고 나를 원망하고 나를 저주하던 그 시간들이다. 나는 고작 100년도 안 남은 내 삶을 미워하며 살았다.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하루아침에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기회는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아무리 약을 먹고, 어떤 치료를 받고, 몇 번의 입원을 더 해도 현실은 순간에 달라질 수 없음을.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아질 언젠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주어진 하루를 더 나은 나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을.
병을 앓기 전 나를 그리워하고 지금의 나를 원망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껏 버려왔던 시간들을 발판 삼아 새로운 나를 믿는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