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더 우울하게 #5

5년 차 조울증 환자의 폐쇄병동 일기

by 찬빈

2025.3.1

죽고 싶다기 보단 꼭 살 이유가 없다고 죽음을 변명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살기 싫다. 그냥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기대되는 것도 아쉬운 것도 없다. 안 그래도 무의미한 인생에 조울증까지 계속 간섭하며 고통을 주니 전혀 살아낼 이유가 없다.

엄마가 죽을 노력으로 살아보란다. 어떻게 그러나. 죽음은 바로 눈앞에 있고 삶은 몇십 년을 더 견뎌야 하는데. 거울을 보면 더 이상 나라는 생각이 안 든다. 아프고 나서부터는 내 삶의 주인을 병에게 뺏긴 것 같다. 말도 행동도 모습도 전부. 아니 꼭 그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10번째 입원을 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병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냥 우울한 사람, 그냥 불안한 사람, 그냥 게으른 사람이 되니까.


다들 나에게 이기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근데 그럼 내가 아무 죄책감 없이 모두를 떠날 선택을 하리란 걸 모르는 걸까? 5년을 이렇게 살아오니 이젠 다들 나를 원래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옛날부터 우울했던 사람. 화가 나면 자해를 하는 사람. 사고를 치면 입원을 하는 사람. 어쩌면 나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이 삶에 너무 적응하여 여기를 벗어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살아내려면 이 흐름을 벗어나야 한다. 나도 그걸 알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이니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보다는 죽는 게 훨씬 쉬운 방법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힘들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 또다시 아무 생각 없이 죽고 싶어 진다.


2025.3.2

오늘 **쌤이 내 방의 자해도구를 발견했다. 좋은 거였는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병신이다. 그리고 &&이랑 산책을 하다가 비슷한 걸 발견했다. 내가 쓸까 하다가 어차피 걸릴 것 같아 쌤께 드렸다. 쌤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하셨는데 난 감사 따위가 중요한 인간이 아니다. 벌써 26살이다. 1년 쉬고 사회에 복귀하면 27살이다. 이제 누가 내 인생사를 듣는다면 100이면 100 한심하게 생각할 것 같다. 어디서부터 내 삶이 잘못된 걸까? 학교에서 처맞고 집에서 맞던 중학생? 뚱뚱하다고 나가 뒤지라던 그때? 나랑 다니기 한심하다 한 그때? 내가 쪽팔리다 한 그때? 내가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자 욕을 하던 그날? 첫 자살시도 후 중환자실에서 자의퇴원 동의서 쓰고 나오라 한 그날? 학교를 관두던 그날? 언제부터 누구 때문인지 원인을 찾고 싶다.

사실 이미 터져버린 정신병 내 뇌가 문제고 내 정신머리가 문제고 내 몸이 문제다. 그걸 알면서도 난 5년째 탓할 사람을 찾는다. 누구 때문에 병에 걸린 게 아니라 병에 걸려서 누굴 탓하는 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 죽고 싶은 하루다. 살아있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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