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5만 원은 벌 수 있었으면 좋겠어.

매일 울었지만, 울었던 것만큼 우리는 단단해지고 있었다.

by 쿠요
마침내 오픈했다.


2018년 4월 30일. 우리는 가오픈을 지나 정식으로 오픈을 했다. 정식 오픈을 했다고 해서 바뀐 건 없었다. 지니엄이 위치한 곳은 언덕 꼭대기 배드타운, 즉 그 뒤로 더 이상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있기보다 자기만 하고 다음날 다시 외부로 나가기만 하는 그런 동네였다. 그러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어서 우리는 외부로 노출되기 굉장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 비둘기와 대화하는 날도 허다했다.


지니엄이 있는 곳. 언덕 꼭대기에 있는데 심지어 그 뒤로는 이어지는 길이 전혀 없다. 산이 있을 뿐.


카페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입지조건이다. 어느 곳에 위치했는가는 마치 사람의 성장판과 같아서 지니엄의 경우 성장판이 거의 닫혀있는 상태에서 오픈을 했으니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 대체 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가?


'우리는 로스터리니까 커피를 볶고 납품할 수만 있으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허참)

생각보다 로스팅 실력을 기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납품을 할 수 있게 되려면 더더욱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워낙 사람과 소통하는 좋아하는 커요(남편)의 성향 때문에 지니엄을 계약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은 로스터리가 아닌 카페를 운영하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입지 조건은 더더욱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우리가 그곳에 자리를 잡아버린 뒤였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월세가 굉장히 저렴한 편이었고, 다행히 좋은 건물주 분을 만나서 계약 이후로 한 번도 월세를 올려주신 적이 없으니 우리가 계속 그곳에서 버틸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몇 번이나 자리를 이전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그럼에도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면... 뭔가 이곳이 우리를 홀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사람을 만나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계속 곱씹었고, 실력을 기르는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버틴다 라는 의미는, 그만큼 괴롭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포기할 수 없으니 그저 버텨내는 것.




무언가를 사 먹을 돈조차 없었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사드릴 수도 없었다.

그저 그때는 가게를 버텨내기에 급급했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은 정말 최소한의 최소한만 사용했다.


당시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목장이라는 소그룹 공동체가 있었다. 매주 목장의 리더의 집에 한 번씩 모여서 함께 밥을 먹고 삶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가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 차려주시는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염치없었지만 감사했고, 그건 또 다른 감동이 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매번 우리의 기도제목을 말씀드렸다.


"하루 매출이... 5만 원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픈 엄마에게 고생하는 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죄책감.

남편을 향한 원망과 그럼에도 사랑하겠다고 발버둥 치겠다는 아내의 의지.


아내와 장모님을 향한 미안함.

가장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럼에도 주어진 길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발버둥 치겠다는 남편의 의지.


우리 두 사람의 아픔과 의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목장 때마다 눈물과 함께 흘러나왔고, 그런 우리를 위해 교회의 어른들은 물심양면으로 응원하고 기도해 주셨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일.

우리가 지니엄을 하면서 처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지니엄을 통해 하고 싶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 누군가의 마음이 쉬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그 바람을 위해 그 당시 하루에 비록 손님이 2~3명만 온다고 하더라도 그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했다.


사람을 돈으로 보지 말 것.


그래서 우리는 하루가 끝나면 서로에게 하는 질문을 바꿨다.

오늘 매출 얼마 나왔어? 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났어?"로.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우리가 지금은 돈을 벌지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 오는 한 두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잃지는 말자고 매일 같이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목장에서 실컷 울고, 다시 힘을 내어 지니엄을 일구어 나갔다.



그리고 그 기도 덕분일까.


지니엄에서 매출이 조금씩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정상오픈을 하고 난 후 나는 지니엄에 디저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취미로 조금씩 조금씩 해왔으니 이제 그동안 만들었던 것 중 자신 있는 것을 지니엄에서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스콘을 만들기 시작했고, 브라우니를 만들었다.


디저트가 조금씩 조금씩 함께 나가기 시작하면서 정말로 하루 매출이 5만 원이 나오는 때가 생겼다. 처음에 5만 원이 나온 날은 얼마나 감동이었던지..!



그리고 어느 날. 커요가 나에게 말했다.


"난 쿠키가 좋은데. 쿠키를 만들어 보는 게 어때?"


2018년 6월. 지니엄에 쿠키가 등장했다. 최초의 어띵쿠키......... 지금 보니 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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