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인도 볼리우드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다. 뭐든지 새로운 것을 마다하지 않는 내 성격과 오래전부터 볼리우드 영화를 즐겨보는 아내 탓에 우리는 한 때 볼리우드 영화를 열심히 관람했다.
델리 근교에 사는 2년 동안 조조 영화비가 우리 돈으로 천 원 정도 되니 힌디 수업하는 샘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보려고 노력했다. 이러다 보니 볼리우드 영화배우들도 제법 알게 되고, 인도 신문을 펴면 인도 연예계 소식에 눈이 가곤 했다. 볼리우드 영화 관람이 인도에 사는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적지 않았다. 우선은 힌디와 인도의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영화를 좋아하는 인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볼리우드 영화 이야기를 꺼내면 열이면 열 모두 즐거운 대화로 이어진다.
저널리스트인 인도 친구의 설명을 근거로 정리하면, 볼리우드 영화에는 인도의 세 가지 문화가 적절히 혼합된다. 봄베이(뭄바이)가 있는 마하라슈트라의 마라티 문화 그리고 북인도의 델리와 펀잡 문화, 마지막으로 뭄바이 밑에 있는 휴양 해변 도시인 고아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문화다. 조금 진지한 정치 영화에는 정치 도시인 델리가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 비즈니스맨이라면 반드시 뭄바이가 등장한다. 갱 영화라면 뭄바이 혹은 델리가 등장한다. 코믹한 영화라면 펀잡을 배경으로 하거나 터번을 쓴 펀잡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라면 어떤 모습으로든 고아가 등장한다. 여기에 주인공이 상류층이거나 젊은 연인이라면 영국이나 미국 같은 해외 로케이션은 기본이다. 이러한 문화들을 적당히 혼합하는 이유는 힌디를 사용하는 관객들이 그러한 지역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반면에 볼리우드처럼 타밀어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도 영화나, 벵갈어를 쓰는 캘커타를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 벵갈 쪽의 영화 산업도 해당 지역 언어 사용자 수가 많기 때문에 적지 않은 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볼리우드 영화를 처음 접하는 한국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 전개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같은 춤과 노래에 유치하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한국 외대 인도어과에서 수업을 듣던 90년대 후반 "Taal"이란 영화를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함께 봤다. 힌디를 잘 못 알아듣는데도 이야기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고, 남녀 학생을 막론하고 모두들 미스유니버스 출신의 여배우 "Aishwarya Rai" 미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뻔한 이야기와 다양한 뮤직 비디오들이 삽입된 영화는 한국 정서에는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 여기에 3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으니 치밀한 구성과 사실성을 영화의 생명으로 여기는 우리로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일 수 있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도에 와서 볼리우드 영화를 계속 접하다 보니, 이제 러닝 타임 2시간밖에 안 되면 왠지 부족한 느낌이다. 여기에 영화 안에 춤과 노래가 없으면 영화비를 환불하고 싶은 충동까지 생기니 어느덧 볼리우드 영화 마니아가 된 것 같다.
인도 사람들이 볼리우드 영화의 볼거리들을 좋아하는 데는 영화는 영화여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는 가능하니 3시간 동안 현실이 아닌 세계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현실에 쉽게 볼 수 없는 피부색이 밝은 미남, 미녀 배우들, 현실에서는 감히 갈 볼 수 없는 런던, 파리, 뉴욕의 거리들 그리고 현실에서는 꿈꿀 수 없는 상류층과의 로맨스 등. 뉴델리의 슬럼가를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란 사실 하나는 슬럼가의 오물 냄새와 시꺼먼 하수 그리고 허름하고 다닥다닥 붙은 천막집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성 접시 안테나들이었다. 길거리에서 천막만 치고 사는 빈민의 집에도 작은 TV와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영화가 아니면 또 무엇으로 한 날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는 기쁨을 누리겠나 싶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