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프르 공항에서 나는 다시 영상 통화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의 힘겨운 숨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고 목이 매여왔다. 어머니께서는 힘드시다는 말씀을 내뱉으셨다. 나는 혹시 내가 도착하기 전에 어머니께서 소천하실까 봐 걱정이 됐다. 서둘러 고향 교회 목사님께 어머니의 병상 세례를 부탁드렸고 우리가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이륙할 때 어머니께서는 세례를 받으셨다. 우리는 6시간 반을 날라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켰다. 나는 또다시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이전보다는 조금은 편해 보였다.
"어머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 저희 곧 도착해요."
우띠를 떠나는 순간부터 나는 줄곧 어머니께 어떤 말씀을 드릴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 귀에 들려드릴 마지막 말씀을.... 인천공항에서 누나를 만나 누나 차를 운전하며 공주로 향했다. 이제 두 시간 후면 어머니를 뵐 수 있다. '조금만 견디시기를...' 나는 애초 계획했던 산본을 들리지 않고 곧바로 공주로 달렸다. 저녁 7시 드디어 공주에 있는 요양병원에 도착하고 서둘러 병실로 올라갔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힘드시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우리 왔어요. 정식이 왔어요. 우리 아이들도 왔어요."
어머니는 힘겹게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에게 큰 형님은 눈을 크게 좀 떠 보라고 했다. 애써 눈을 떠 보았지만 어머니는 시선을 맞추기 힘들어하셨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의 귀에 몸을 갖다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이제 우리 왔으니까 가셔도 돼요!"
잦고 거친 숨은 크고 깊은숨으로 바뀌었다. 나는 형제들과 조카들에게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귀에 대고 하라고 했다. 우리 마지막 인사는 오열에 가까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볼에 내 볼을 비비며 귀에 말씀드렸다.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인생 잘 사셨어요."
나의 어머니 고 윤희분 성도는, 2017년 9월 27일 저녁 8시 40분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