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거의 없다. 출생과 출생 직후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예수님의 십 대나 이십 대에 대한 기록은 누가복음 2장 40-52절이 유일하다. 누가는 왜 열두 살의 예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걸까?
누가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누가가 얼마나 사건들이 가진 역사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역사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그의 책들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자신을 자랑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의 출생과 사역만이 아니라 예수의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누가에게는 확실한 출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다. 누가복음 2장 51 하반절에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라는 기록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출생과 성장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절대적인 증인이 된다. 누가복음 2장 19절에도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는 기록이 있다.
누가가 열두 살 예수를 기록한 것은 단순히 성장기의 예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가복음 2장 40-52절에 나오는 "열두 살 예수 실종사건"을 기록하는 누가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 사건이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을 찾을 수 있다. 누가는 52절이나 되는 2장 전체에서 "예수"라는 단어를 총 6회 쓰고 있는데 그중에서 40-52절에만 총 5회를 사용한다. 게다가 누가는 40절과 52절을 유사하게 기록하면서도 40절의 "아기"를 52절에서 "예수"로 대체시켰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누가는 열두 살의 예수가 단순히 아기(40절, "파이디온")이거나 아이(혹은 소년, 43절, "파이스")가 아니라 메시아로서의 "예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열두 살 예수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되묻는다. 열두 살 예수는 분명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자신이 예수(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가는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서른 살에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는 서른 즈음에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진 것이 아니다. 최소 열두 살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51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열두 살에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는데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50절) 부모와 함께 나사렛에 내려가서 그 부모를 섬기며 나머지 18년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는 것이다.
성장기의 예수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여느 소년처럼 선생들 중에 앉아서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배우셨다(46절). 그리고 그는 자신이 누구이고 장차 무슨 일을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때를 기다리며 부모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섬기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