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꽃은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몇 마디 말보다 꽃 한 송이에 위로받을 때가 있다. <화가들의 꽃>은 세기의 거장들이 그린 108점의 꽃 그림을 담은 책이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생생한 붓질이 느껴지는 고화질 도판. 그리고 영국 최고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원예 전문 작가 앵거스 하일랜드와 켄드라 윌슨의 친근한 해설이 간략하게 곁들여져 있다. <화가들의 꽃>에는 해설로 지식을 채우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싱그러운 꽃 그림으로 메마른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누구나 꽃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빼앗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꽃 자체로 마음은 환해지고, 곧이어 꽃의 패턴이나 색감 모양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화가들도 마찬가지로 꽃을 본 후 각자의 영감으로 각자의 꽃을 캔버스에 피워냈다.
진정으로 창의적인 화가에게는
장미 한 송이를 그리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장미 한 송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지금껏 그려진 모든 장미를 잊어야만 하니까.
- 앙리 마티스
<화가들의 꽃>은 기존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과는 사뭇 다르다. 오직 '꽃' 그림을 향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보집' 같다. 한 번 가볍게 책을 스르륵 훑어보았을 때, 모든 페이지에 그림이 배치돼 있었다.
한 페이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꽃 그림이 한 면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림과 작가의 생애에 대한 설명이 한 페이지에 적혀있다. 설명은 한페이로 그것이 끝이다. 긴 글보다는 꽃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책이었다. 설명 페이지 뒤에는 작가의 한마디와 또다시 꽃 그림이 고화질의 도판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중 마음에 와닿았던 글귀나 작가, 이전부터 좋아했던 꽃에 대한 그림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티스는 꽃과 풍경이 있는 방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과 순수함과 평온함의 예술이다"라고 할 정도로 편안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작가였다. 이 그림에서는 짙은 색 꽃병 안의 반짝이는 장미가 균형을 잡아준다. 그리고 창가에서 보이는 프랑스 지중해 연안 휴양지 코트다쥐르의 빛이 그림 전체를 환한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마티스는 '영국인 산책로'라 불리는 길 뒤쪽 방에서 이 새벽녘의 장면을 화폭으로 담았다.
그전에도 마티스는 꽃이 있는 경치 좋은 그림을 몇 점 그린 적이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콜리우르의 열린 창문>이다. 모더니즘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으로 도자기 화분들과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창문이 분홍, 빨강 바다를 향해 열려있는 풍경이었다. 이 풍경에서 야수파란 이름이 탄생한다. 평론가들은 과감한 색채와 테크닉을 보고 거친 짐승의 솜씨라 평했다.
오필리아는 그림을 좋아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적 단숨에 눈길을 빼앗겨버린 작품이다. 강물 위 드레스 사이로 꽃이 드리워져있고 숨이 끊어질 듯한 표정의 한 소녀가 강에 빠져 있는 모습은 마음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해당 작품 <오필리아>는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 작품이다. 천천히 물이 차오르는 긴 드레스와 꽃을 상징적으로 활용해 숨이 다하기 직전의 순간을 강조했다. 이 그림에서 식물들은 식물학자에 버금갈 만큼 세밀하게 그려졌다. 소녀와 소녀를 둘러싼 이 꽃들은 "불쌍한 여인"의 상황을 넌지시 알려준다.
강가에 핀 야생 장미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버드나무는 버려진 사랑을 뜻한다. 어린 오필리아가 걸고 있는 제비꽃 목걸이는 순결과 죽음을 상징한다. 오필리아의 오빠는 그녀를 "5월의 장미"로 불렀는데, 이는 피지 않은 꽃을 의미한다.
책의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오필리아> 그림 도판은 마치 미술관에서 관람하듯 생생한 붓칠과 색채를 담고 있었고 그림을 한없이 쳐다보게 만들었다.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소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 방안의 작은 미술관인 듯 해설과 함께한 그림은 몰입감이 뛰어났다.
꽃은 유한한 생명, 일시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덧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유한하기에 아름다움이 더욱 다가오고,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생명력의 힘이 있다. 화가들은 시대에 상관없이 꽃에 대한 그림을 남겼다. 18세기에 그려진 불꽃같기도 한 튤립은 굉장히 현대적이었다. 꽃 정물화에는 사물의 본질이 있다. 책을 찬찬히 끝까지 보다 보면, 꽃병 속에서 죽어가는 꽃이든, 흙에서 자라나는 꽃이든 그 순간의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유한한 생명력의 상징인 꽃은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다. 예술가는 그 작은 순간조차 포착하여 우리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술가가 포착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도서 <화가들의 꽃>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삶과 죽음에 관한 따뜻한 메시지를 얻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