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운을 나누어 주지 않을래?

by 얀느

스무 살, 대학 생활을 유난히도 혼란스럽게 시작했다. 수영할 줄 모르는데 바다에 던져진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넘치는 시간과 고삐 풀린 자유를 감당하는 것이 벅찼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 불안했다. 전까지는 집과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따랐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니 부담스러웠다. 교양 선택은 뭐고, 필수 선택은 뭔지, 강의실은 어디에 있고, 수강신청은 어떤 것을 해야 좋을지, 어떤 동아리에 들지,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하루가 갔다.


다른 아이들은 척척 알아서 잘만 하는데 나만 버벅대는 바보 같았다. 무엇보다 입학한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하는 학교에 겨우 추가 합격을 했지만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다. 집에서 멀어지면 살 집을 구해야 되고, 그에 따른 부대 비용이 만만찮은 것은 사실이니까 경제적으로 가장 합당한 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됐지만 마음속 울적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빠릿빠릿하지 못한 내가,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워 동굴 속 안으로 또 안으로 숨어들어 숨죽였다. 바닥을 뚫을 기세로 우울하던 어느 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혐오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디든 가보자며 무작정 집을 나서 헤매다가 도서관에 들어갔다. 서가에서 눈에 띄는 책 하나를 고르고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인생이 잘 풀리는 방법에 관한 책이었던 것 같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운 좋은 사람 옆에 붙어 있으면 그 운을 나눠 가지게 되니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어라"는 구절이었다. 코미디 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갖 페인트 칠한 벤치에 앉아 바지를 망쳤던 일을 떠올리며 '운이 무슨 페인트도 아니고, 운 좋은 사람 옆에 있으면 그 운이 나안테도 묻어난다니 말도 안 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래. 운 좋은 캐릭터 하면 가영이만 한 친구가 없지. 그 애와 친해지면 나도 그 운을 조금이라도 가져볼 수 있으려나?'

가영이는 종잡을 수 없이 자유로운 친구였다. 무계획으로 대충 사는 것 같은데 얼추 삶의 톱니바퀴가 이탈하지 않을 정도로 유지시켰다. 대리출석을 부탁하고 수업시간을 밥먹듯이 빠져도 들키지 않았다. 레포트는 언제나 제출 직전에 누군가의 것을 베껴 냈다. 이런 민폐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애교로 상쇄시켜 미움받지 않았다. 같은 과 친구들은 그녀의 엉뚱함이 지나치다 했지만 나는 그런 그녀가 신기하기만 했다. 한 번도 그런 캐릭터를 본 적 없기 때문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가영이에게 다가갔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어디든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함께 수업 듣고, 점심 먹고, 도서관에 가고, 집에도 놀러 갔다. 별일 없는 날에는 카페 '헬리 퀸'에 갔다. 멋있는 남자 선배가 DJ로 있는 음악 카페였다. 팝송을 많이 알았던 가영이가 신청곡을, 나는 사연을 써다 날랐다. 우리 사연이 소개되고 신청곡이 나오면 우리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여기 우리예요!"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종종 도서관을 향하다가 꽃구경을 가고, 과모임 가다가 그 옆 영화관에 들어갔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던 이전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씁쓸함은 남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니 괜찮았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바꾸기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 같아 왠지 뿌듯했다. 이런 시간이 점점 달콤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영이보다 간이 작아 대리출석으로 강의를 빼먹지 못했다. 도망가는 가영이를 붙잡아 강의를 함께 들었다. 남의 레포트를 베껴내는 것이 마음이 걸려 그녀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레포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시험기간에는 함께 학교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를 했다. 나는 밤새며 공부하면 시험을 더 망치는 사람이란 것을 그때 깨달았지만 그것도 다시 없을 추억이었다. 그녀와 나는 이렇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1년을 보냈다.


가영은 1학년을 마친 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1년 후 뚱뚱해진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에어로빅에 빠져 강사 자격증도 땄다. 여전히 마음 내키는 대로 즐겁게 살다가 4학년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다. 열심히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도 했다. 가영이랑 놀 때보다는 재미가 덜했지만 대학 캠퍼스의 사계절을 제대로 만끽할 줄 아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 전에 원하던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내가 가영이의 운을 나눠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운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밝은 기운이 나에게 전염되었던 것 같다. 어두움이 밝음을 덮는 것이 아니라, 밝음이 어두움을 집어 삼켜버린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은 내 삶에 창 하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그 창으로 햇빛과 맑은 공기가 들어와 음습했던 내 삶이 한결 밝아진 것이다. 어두웠던 내 마음에 볕이 든 것이다.


그 이후로 내 삶이 힘들고,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에 괴로우면 집에 머무르지 않고, 어디로든 밖으로 나간다. 정체된 공간에서의 어두운 생각은 끝없는 어둠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서 나를 구할 글귀를, 나를 구할 누군가를, 나를 구할 밝은 빛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힘을 얻는다. 처음으로 밝은 빛을 찾아갔던 나의 스무 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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