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와이 어르신 친구들

by 얀느

20대 후반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하와이로 떠났다. 부모님께는 1년 후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지만 사실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대로 살았던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내 삶을 개척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지만 결국 I-20 학생 비자를 받고 하와이 땅을 밟았다.


그 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나는 하와이 인싸가 되었다. 특히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차 마시자, 점심 먹자는 전화가 종종 걸려 왔다. 대부분 한인을 제외한 아시아계 2세들이었다. 하와이 미술관 스페셜리스트였던 폴린 아줌마와는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종종 점심을 함께했고, 노라와 제인 아줌마와는 티를 마셨다. 은퇴 생활을 즐기던 리처드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뉴욕대 출신인 그의 아들과 나를 엮어주고 싶어 했다. 내가 가장 가깝게 지낸 이는 가오리 언니였다. 하와이로 유학 왔다가 현지인과 결혼하여 정착한 일본 사람으로 8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친언니같이 나를 챙겨주었다.


영어 실력도 형편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던 내가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하와의 대학교 랭귀지 프로그램에 다니면서 알게 된 대학원생 경란 언니로부터 어느날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영어를 배울 좋은 기회라며 어덜트 스쿨의 한국어 수업에서 봉사해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한국의 주민센터나 도서관 강좌처럼 그곳에도 저녁 시간에 공립학교에서 성인강좌가 열렸다. 그중 하나가 한국어 수업이었다. 나는 수강생들을 위한 한국어 실습 봉사자로 참여했다. 내 영어 실력이나 그들의 한국어 실력이나 비슷했지만, 서로를 기다려줄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이들은 수업이 아닌 날에도 만나서 연습하길 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만나도 여러 사람이니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과의 약속이 잡혀있던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과 만나 밀도 있는 주제로 나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무슨 언어를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 중 누구를 만나더라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통적인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법의 재료는 바로 한국 드라마였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내가 한류라는 말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이들은 모두 초기 한류 팬들이었다. 욘사마와 최지우가 열연을 펼친 <겨울연가>가 KBS에서 방영되고, 한일월드컵이 열렸던 때가 2002년이었다. 2003년 <올인>, <옥탑방 고양이>, <다모>, <상두야, 학교 가자>, <대장금>, <천국의 계단>….


내가 한 번도 시청한 적이 없는 한국 드라마들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해 줬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내 영어실력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도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그 책임이 조금은 나에게 있는 것 같지만, 그들도 그 시간을 행복한 추억으로 남겨두었으리라.


전 세계를 떠돌며 살고 싶었던 나는 2년을 못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용기 내어 말한 내 본심에 아빠가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내 행복때문에 가족이 힘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만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렸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 결정이 후회스럽다. 아빠를 이길 배짱도 없던 스스로가 실망스럽기도 하고…. 평생 살아온 곳을 벗어나 낯선 곳에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행복했는데 꺾여버린 꿈이라서 더욱 아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온 지 20년이 넘었으니 하와이적 또래 친구들은 거의 연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친구들과의 우정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한 K드라마 팬으로, 아이돌 팬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한류가 이렇게 성장할 줄 몰랐다. 이렇게 자그마치 20년 이상의 한류 팬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는 까닭에 한류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드라마와 노래에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20년간 꾸준히 좋아한 것은 있다. 바로 이 어르신 친구들이다. 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다. 그들이 몸소 보여주는 “나이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젊음,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느긋함, 배우는 즐거움, 도전하는 용기” 이런 것들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마주하다 보니 조금씩 내 태도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르신 친구들 건강이 걱정되는 시점이 왔다. 그들이 더 이상 한국에 오지 못한다면 내가 하와이로 가서 즐겁게 해주어야겠다. 몸이 어디에 있던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오늘은 오랜만에 리처드, 노라, 가오리, 케일린에게 안부 카톡 넣어야겠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모티콘 가득 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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