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딸들」
대학교 시절,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온라인 채팅이 한창 인기였다. 친구가 하던 것을 구경만 하다가 자연스레 동참하게 되었다. 친구의 닉네임은 '뱃살공주'였다. 백설공주의 패러디 같은 그 이름이 우스워 나도 '턱살공주'로 정했다. 순전히 재미로 지은 이름이라 그 닉네임을 오래 쓸 수는 없었다. 일단 나는 턱살이 없었고, 공주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으니까 말이다.
90년대 중후반, 한메일이 처음 생겼다. 손 편지가 아닌 전자우편으로 전 세계의 누구에게나 단숨에 편지를 보낼 수 있다니, 너무나도 신기했다.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주소보다는, 나에게 의미 있는 문자로 메일 주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 지금까지 쓰고 있는 주소가 reindeermoon@hanmail.net이다. 온라인 카페에 가입할 때마다 닉네임을 요구해 메일과 관련된 닉네임을 만들었다. 사이트마다 비슷하게 만들다 보니 어느새 하나로 통일하여 쓰게 되었다. '얀느', 25년 넘게 써 온 내 두 번째 이름이다.
내 이메일과 아이디, 닉네임은 모두 한 권의 소설에서 시작되었다.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것이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은 『Reindeer moon(순록의 달)이』이고, 주인공 이름은 야난(yanan)이었다. 처음 가입하던 온라인 카페에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어 변형하다 보니 내 닉네임은 얀느(yann)가 되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25년간 내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쓰인 것일까.
『세상의 모든 딸들』은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빙하 시베리아 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스케치하고 온 것 같은 생생한 묘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변하지 않을 가치에 관한 이야기라서 깊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사회건, 고도로 발전된 사회건 남자는 식량을 구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는 그 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그렇게 살아왔어. 아이를 낳고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그렇게 살다가…. 야난 너는 내 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너도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이 대사는 엄마가 죽기 전에 어린 야난에게 해준 말이다.
나는 이 구절이 이렇게 해석되었다.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여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과거부터 내려온 관습, 네가 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너라고 별 수 있겠니.' 이에 반발심이 일어났다. 아마도 나는 엄마의 삶을 비추어보고,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를 가늠해 보았던 것 같다. 내가 느낀 반발심은 오히려 내가 이 세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이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며 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2만 년 전 사람인 야난의 엄마도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살가웠는데, 우리 엄마는 살갑지도, 자상하지도 않은 엄마였다. 바다에, 밭에, 부엌에서 쉼 없이 무언가를 하느라 딸과 정답게 대화할 시간은 커녕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낮에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방에 누워 있으면 분명 어딘가 많이 아픈 날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엄마의 삶이 한없이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권위적인 남편,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 쪼들리는 경제상황, 줄어들지 않는 집안일.. 노동과 희생으로 점철되었던 엄마의 일생이 안타까우면서도 나의 삶은 분명 엄마의 것과는 다를 것이리라 결심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도 어느새 40대 후반이 되어 버렸다. 삶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챙기면서 우아하고 고고하게 살고 싶었다. 육아하면서도 우리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애를 썼다. 두 아이를 낳고 빠듯한 살림에 동동거리던 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관습대로 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일터로 돌아와야 했다.
첫째가 열 살 때 남편이 투자실패로 빚을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빚을 갚기 위해 급하게 일을 시작해야 했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돈은 조금 벌더라도 아이들을 케어하며 할 수 일을 찾고 싶었다. 나는 학교사서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몇 년이 지나 그것을 이루었다. 내가 열 살 때, 우리 엄마도 아이 여섯을 두고 몇 년이나 타지로 돈을 벌러 나가셨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자라서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겠지.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월등히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지.”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삶을 살았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하루를 쪼개며 살아가는 지금의 나. 삶의 무게를 견디며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때의 엄마와 닮아 있다. 이제는 알겠다. 엄마도 세상의 모든 딸들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그저 자신의 삶을 묵묵히 감당하던 한 명의 야난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도 또 한명의 딸, 또 한 명의 어머니인 것을 말이다.
나는 ‘얀느’라는 이름으로 글을 쓴다. 순록의 달 아래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길을 찾아가던 야난처럼, 나 역시 일상의 무게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글을 쓴다. '얀느'는 또 다른 나이자, 길잡이인 동시에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가 닿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오늘도 얀느로,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