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에서 깨달은 문학의 쓸모

by 얀느

대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MT를 갔다. 과 전체 MT로 선후배가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날 친해진 선배가 누구였는지 기억에 없고, 오로지 종이컵으로 연거푸 마시던 소주만 기억에 남았다. 첫 잔은 매우 썼지만 두 잔, 세 잔 마실수록 술술 넘어가던 소주, 급기야 주변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다음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게 만든 소주말이다.


다음날 아침 숙취로 매우 괴로워하며 일어났다. 머리는 떡져있고, 입안이 썼다. 몸과 마음이 굉장히 찝찝하게 느껴져 간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인지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때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다가와 대뜸 "너네 엄마 돌아가셨어?" 묻는 것이었다. "아니, 집에 잘 계신데? 왜?", "근데 어젯밤에 왜 그랬어?" "어젯밤에 뭐? 내가 뭐 했어?" 그제야 잘게 부서진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희미하게 생각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 불쌍해. 너무 불쌍해!" 이 문장을 무한 반복하던 내 모습, 토하던 내 등을 두드리던 그 친구가 내 옆에 있었다. 제발 곱게 잤으면 좋았을 텐데, 밤새 야영지를 돌아다니며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과 사람들에게 별 꼴을 다 보였구나 싶었다. 나는 무슨 연유로 집에 편히 계시던 엄마를 드라마급 사연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신기한 것은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추측만 할 뿐.


MT 가기 전에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수업에 제출할 감상문을 작성하고 발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박경리의「김약국의 딸들」이었다. 일제강점기 통영을 배경으로 하는 딸 부잣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여서 호기심이 일었다.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비극으로 치달았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다섯 딸의 어머니인 탁 씨가 셋째 사위의 도끼에 맞아 죽는 장면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전개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의 삶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딸이었다. 제주도 아낙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참으로 팍팍했다. 엄마도 깨밭, 콩밭, 귤밭을 일구며 바다에 물질도 나갔다. 우리 집도 딸만 여섯인 딸 부잣집이었다. 일 손을 빌릴 형편이 안되어 주말마다 온 식구가 함께 밭에 나갔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서 식구들이 먹을 아침 준비를 하고, 점심 도시락을 싸고,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저녁을 하고 집안일을 했다.


밭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가장 먼저 씻고 방에 들어가 신문을 펼쳤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밭에 다녀온 차림 그대로 저녁 준비를 하며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를 했다. 세탁기는 중학교가 되어서야 생겼다. 큰 아이들이 저녁 차리는 준비를 도와줘도 엄마가 할 일은 많았다. 가만히 앉아 신문 읽던 아빠는 화를 냈다. 무얼 하느라 이 시간까지 밥 준비가 안되는지, 애들 배고픈 것도 생각하지 않고 본인 할 일만 한다며 엄마에게 호통쳤다. 그런 광경은 어릴 때부터 보아온 터라 익숙하면서도, 절대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아빠는 가만히 앉아서 신문만 보면서 호통만 치면 다인가?' 그럴수록 엄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딸 여섯 중에는 도움 되는 딸, 뺀질뺀질한 딸, 별 도움 안 되는 딸이 있었다. 큰 언니는 손이 빠르고 눈치도 빨라 가장 도움 되는 아이였다. 다섯 째인 나는 별 도움은 안 되지만 엄마의 힘든 것을 가장 잘 알아주는 딸이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아 엄마는 결국 몇 년이나 타지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막내가 여섯 살 때였다. 엄마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엄마는 없었다.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그립고 안타까웠다.


나는 소설 속 탁 씨 부인과 엄마를 동일시했나 보다. 아마도 그날의 일은 내 마음속 엄마와 탁 씨 부인의 비극적인 결말이 만나 크나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알코올이 일으킨 장난이었을까. 이유가 어떻게 되었던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읽은 책들이 보이지 않게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은 일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내가 술을 과하게 마시면 곱게 자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알코올에 내 영혼을 내어주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첫 MT의 기억은 부끄러움으로 남아 내 등을 두드려주던 친구와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 친구는 나의 민낯에 놀랐을 테고, 나도 친구를 볼 때마다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소주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냄새만 맡아도 화학 약품 냄새가 나서 속이 메스꺼웠다.


수많은 추억, 내가 읽고, 보고, 들은 이야기들, 고뇌들이 모여 지금 내가 되었다. 치기 어린 스무 살에 분출할 곳 없던 감정의 폭포수가 술과 만나 주정이 되었다면, 지금은 머리도, 속도, 몸도 상하지 않는 글쓰기로 내 감정을 마주한다. 그때는 술주정으로, 지금은 글쓰기로 문학은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며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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