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이 있던 2002년 12월 하와이로 어학연수를 갔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반복되는 일상이 못 견디게 지루해 매일 밤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간지 반년도 안되어 나는 완전 하와이 인싸가 되었다. 현지인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친구들이 만나자고 매일 연락 왔다. 우연한 기회로 한국어 클래스에서 봉사를 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동양계 2,3세였고 은퇴하였거나,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 가오리 언니였다.
그때는 한류가 시작되던 시기로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 '천국의 계단', '올인', '다모'등이 방영되던 시기였다. 수강생들은 모두 한국 드라마 마니아였다. 이들은 수업이 아닌 요일에도 만나서 한국어 연습하기를 원했다. 나에게 남는 것은 시간이었고 내 영어 실력을 위해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공통 관심사가 없어도 이야깃거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우리에게는 한국 드라마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니 20년 전에 한류가 사그라지지 않고 세계로 더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이 아닐까 싶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 한류 덕을 크게 본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가오리 언니는 하와이로 유학 갔다가 남편을 만나 정착한 일본 사람으로 나와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잘 맞았다. 우리는 한국어 교습을 빌미로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 딸기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가게 등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언니의 친구도 종종 소개받아 함께 친구가 되었다. 그들 모두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언니는 드라마보다 가요를 더 좋아했다. 특히 당시 인기 있던 보이그룹 'K-POP'의 노래를 가장 좋아했고, 최애 멤버는 메인보컬 '영원'이었다.
2018년 JTBC 프로그램 '슈가맨 2'에서 그룹 '케이팝'이 소환되면서 잊어버렸던 옛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언니가 좋아하던 그 그룹이었다. 풋풋했던 미소년들은 2005년 그룹 해체 후 30대 후반의 회사원들이 되어 있었다. 메인보컬이었던 '영원'은 IT회사 과장님이 되었다. 그들의 노래가 2003년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2018년 가을 우리는 만났다. 언니와 함께 서울의 한 자선 음악 행사에서 '영원'을 만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언니의 오랜 팬심을 전해주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응원하던 팬이 여기에 있어요. 항상 응원할게요.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영원도 행복해했고, 언니도 행복해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남을 사진 한 장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언니는 그룹 '빅뱅'의 팬이 되었다. 특히 최애 멤버는 메인보컬 '태양'이었다. 팬이 된 후로 언니는 콘서트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한국에 왔다. 언제나 인사동에 숙소를 정했고 우리는 사찰 음식점에서 만났다. 언니가 서울에 왔다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 겨우 나갈 수 있는 처지였으니 함께하는 한 끼 점심으로 만족해야 했다. 언니는 서울 이곳저곳을 혼자서 씩씩하게 누비고 다녔다. 유일하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콘서트 예매였다.
'콘서트 티켓 그까짓 것'이라며 나섰는데 예매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예매 오픈 시간 전에 사이트에 접속하여 대기하다가 직전에 실수로 예매하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8시부터 시작합니다' 팝업을 닫고 다시 들어가니 무한 로딩, 그다음 해에는 초시계를 확인하며 8시 '땡'하자마자 클릭했는데도 또 로딩 중, 우리 집 느린 PC가 문제인 것 같아 그다음 해에는 남편을 피씨방으로 보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한 번도 본 예약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언제나 중*나라를 통해 웃돈을 얹어 표를 사야 했다. 사기꾼인지 아닌지 표를 받을 때까지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또 어떻고!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내도 언니와 함께 콘서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려서 일상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언제나 울려 퍼지던 BGM은 상쾌 발랄한 동요였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목청 터져라 책 읽어주었고, 쉬는 타임에는 '뽀로로'와 '우당탕탕 아이쿠'를 보았다. 콘서트니 이런 것들은 완전 저 너머 세상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콘서트 티켓 예매는 고마운 지인에 대한, 나의 하와이 시절에 대한 예의였다. 길지 않았던 그 시절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줬으니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언니가 선언했다. 더 이상 빅뱅을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이다. 언니는 그들이 쓰는 가사, 그들이 만드는 노래, 퍼포먼스, 반짝이는 재능이 좋아 빅뱅을 좋아했다. 콘서트가 있으면 한국뿐 아니라 홍콩, 일본, 미국 본토로 달려가 손수 만든 팻말을 들고 항상 앞줄에 서있기를 10년,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는 현실이 이제는 서운하고 지친다며 그만하겠다는 것이었다. 티켓팅을 더 이상 안 해도 되니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언니의 속상한 마음에 나도 속상해졌다. 나를 보지 않는 누군가를 오래도록 좋아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일본어 '오타쿠'라는 단어가 있다. 한 분야에 전문가 이상으로 빠져든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꾼 '덕후', 그 준말에 '질'을 붙여 덕질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요즘은 스타가 활동하는 매체와 범위가 다양해져 스타를 덕질하는 재미가 크다. 팬은 스타의 매력과 재능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찾고, 스타는 팬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성장해 간다. 팬카페, 팬 커뮤니티를 통해 팬인 나는 우리가 되고 나아가 팬덤이 되어 스타에게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덕질은 더 이상 음지의 영역이 아닌 개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양지의 활동이 되었다. 하지만 언니는 저 멀리 하와이에서, 혼자 외로운 덕질을 일찍부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와는 20년 넘는 인연이라고는 하지만 지척에 살면서 살펴본 사이가 아니기에 서로의 삶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나는 그 시간을 인생의 절망, 희망, 슬픔, 기쁨을 골고루 경험하며 보냈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혼자되는 아픔을 겪었고,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업을 일으켰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포기를 몰랐고 머릿속에는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했다. 언니에게 K 컬처는 짠 내 나는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시공간을 의미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일깨워주는 각성제로서의 시공간말이다.
빅뱅 이후에도 언니는 여전히 서울을 방문한다. 인사동에 숙소를 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피부과도 들린다. 김치도 직접 담가 먹는다고 유기농 매장에 들러 고추장, 고춧가루를 공수해 간다. 요즘은 한국 연예 뉴스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가오리 언니는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을,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장을 그 누구보다 생생히 지켜봐 온 사람이었다. 온통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말이다.
"얀느야, 2ne1 콘서트에 꼭 가고 싶은데 예매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가오리 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콘서트가 3개월 후에 열리는데, 그 예매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은퇴한 줄 알았던 2ne1이 콘서트 연다는 소식도 놀라웠지만 언니가 그녀들을 좋아하는지도 몰랐기에 놀라웠다. 언니는 결국 투애니원 콘서트에 갈 수 있었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에 시간은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 놓을지 알 수 없다. 투애니원 콘서트는 결국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았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