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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느 Aug 23. 2024

빨강머리

아이와 동네 산책을 하다가 지수 엄마를 만났다.

안 본 사이에 머리 색깔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지수 엄마, 머리 색깔이 바뀌었네요! 색깔이 엄청 예뻐요! 무슨 색이에요?"

"언니, 이거 애쉬 카키예요. 예쁘죠?"

"네, 초록색도 보이고 황금색도 보이고 색이 오묘하네요! 정말 예뻐요!"

"이거 제가 집에서 했어요. 엄청 쉬운데, 언니도 해드릴까요?"

“에이~아녜요! 제가 하면 저 색깔 안 나올 것 같아요. 아휴 괜찮아요.”

보는 것은 예쁘지만 내가 저 머리를 한다니 말도 안 된다. 머리 길이에 변화를 주거나 아주 가끔씩 펌을 해서 사자머리는 만들어도 색깔 바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제가 해드릴게요. 집에 염색약도 있어요. 미용실 가면 얼만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더 나이 들면 저런 머리는 다시 못할 것 같다. 돈도 안 들고 무엇보다 색이 너무 예쁘다.

애쉬카키색 머리를 한 내 모습을 상상하니 구미가 당겼다.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수네 집으로 가서 약품이 옷에 튀지 않게 비닐 옷을 둘렀다.

“언니, 언니는 애쉬 레드와인색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요?”

잔 안에서 출렁이는 검붉은 와인이라..

“와인색도 너~무 예쁘겠어요! “

“탈색 먼저 할게요. 탈색하고 염색하면 색이 그대로 너무 예쁘게 나오거든요.”

탈색? 머리 색을 뺀다고?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머리한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잘못되기야 할까.

"네, 머리 색만 예쁘게 나온다면야, 해주세요!"

역시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이런 머리, 저런 머리를 해봤어야 진정 탈색의 의미를 알았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 이 결정으로 1년 고생할 줄은.

기어이 탈색 후 애쉬 레드와인으로 염색했다.




"언니, 머리 색 너무너무 예쁘게 나왔어요!"

검붉은 색에서 검은색이 조금 더 강하게 도는 레드와인을 상상하며 얼른 거울을 보았다.

‘어머나! 세상에. 이건 내가 상상하던 와인색이 아닌데... 그냥 빨간 색이쟎아?’

차마 속마음은 꺼내지 못하고 예쁘다. 해줘서 고맙다. 내가 언제 이런 색깔을 해보겠냐. 보답하겠다며 호들갑을 떨고 지수네 집을 나왔다. 마음에 잔뜩 수심을 안고서 집으로 가다가 동네 엄마를 만났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경은엄마 아냐? 머리 색 바꿨어?”

“네, 머리 색 좀 바꿔봤어요. 어때요?”

“호호호, 경은엄마 완전 날라리 아줌마 같아!”

“아.. 날라리 아줌마요? 호호호, 제가 언제 이런 머리 해보겠어요. 용기 좀 내봤지요.”

태연 한척했지만 내 볼이 머리색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 엄마가 못 봤길 바라면서 후다닥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불타는 듯 새빨간 단풍 모자를 쓴 여자가 서 있다.

“아! 속상해. 이 일을 어쩐담.”

더 늙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 버킷리스트, 용기 이런 단어들과는 상관없이 잠깐의 망설임으로 이 머리를 했다니. 10대, 20대도 아닌 자그마치 40대인 내가!

“헐~~~~”

책 읽어라 공부해라 매일 잔소리하던 엄마가 빨간 머리를 하고 나타나니 애들은 할 말을 잃었다.

남편은 폭소가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을 견디면서 나쁘지 않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래도 고마웠다.


탈색 때문에 머리가 많이 상해서 염색을 다시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이 머리로 당분간을 지낼 수밖에.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화려한 머리색에 비해 얼굴이 상당히 심심하게 생겼다.

나는 여태껏 이 심심한 얼굴을 만들면서 열심히도 살았구나.

삶의 한 부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쓰며 살았는데 말이다.

‘이왕 머리가 이렇게 되었으니 심심하게 생긴 얼굴 커버하게 입술이라도 좀 밝은 걸로 바꿔야겠어.

옷장의 옷은 왜 하나같이 죄다 회색, 검은색인 거야? 밝은 옷이 필요하네.

우리 집에 내 머리색과 비슷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니, 장미꽃이라도 갖다 놔야지.’

머리 색깔로 시작된 고민은 나의 일상을 밝은 색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나도 한때는 나만의 색깔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무채색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 후 나의 빨강머리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빨갛던 머리색은 단풍잎이 지는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물이 조금씩 빠지더니 주황색으로 지속하다가 결국은 색이 모두 빠져 노랑머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염색을 시도했지만 곧 색이 빠져버렸고 두피 보호를 위해 잦은 염색을 하지 못하니 노랑머리로 상당 시간 지내게 된 것이다. 검은 머리가 아닌 빨강, 주황, 노랑 색의 머리를 거치면서 여기저기 잘도 다녔다. 열심히 책모임도 나가고, 공부도 하고, 아이들과 놀러 다니며 계절의 변화를 만끽했다.


“우리 집 딸들 중에 노랑물들이는 애는 없었는데 너는 그 나이가 돼서 부끄럽지도 않니?”

친정어머니가 나무랐다.

“아무도 저에게 신경 안 쓰던 걸요? 괜찮더라고요”

“동네 보는 눈들이 있잖니.”

작은 시골이어서 더욱 동네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하도 많이 들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었던 문장,

‘남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우리 아이들에게 까지도 영향을 끼쳐온 문장이었다. 막상 빨강머리를 하고 나가보니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무슨 옷을 입던지, 무슨 머리를 하던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만 있을 뿐. 

경험으로 깨닫고 나니 40년 넘게 스스로를 옭아매던 포승줄이 스르르 풀려버렸다.

하던 공부가 끝나 계약직 면접을 앞두고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 염색이 쉽게 빠질까 봐 약을 바르고 시간을 두배로 두었더니 꼭 마네킹 머리같이 부자연스러운 깜장색이 나와버렸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이번에는 얼굴보다 생기 없어 보이는 새까만 머리색이 참으로 심심하게 보인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머리색이 어떻든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걸.

편견을 버렸더니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로 기억될 날들이 쏟아졌다. 삶은 참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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