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눈(Eye)의 비결

by 얀느

어릴 적 나는 유난히 TV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요술공주 밍키, 은하철도 999, 달려라 하니 같은 TV 만화가 어찌나 재밌는지 TV에서 하루 종일 만화만 방영하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상상하곤 했다. 그러니 요일마다 몇 시에 어떤 만화를 하는지 꽤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만화 시작 15분 전에 들어와서 TV 앞에 경건한 자세로 앉아 광고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시작된 만화는 언제나 너무도 짧게 끝났다. 뭐, 그래도 괜찮았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다음 이야기가 기다릴 테니 말이다.


외화시리즈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였다. V, 전격 Z작전, 출동 에어울프, 맥가이버, 600만 불의 사나이 등 만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발전된 나라인지, TV 속 자동차, 가전제품은 물론 도시의 풍경까지도 내가 살던 시골 동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멋져 보였다. 배우들은 또 어떤가. 외모가 아름답고 세련된 것은 물론, 그들이 쓰는 제품들은 내가 평생 못 써볼 것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 반짝이는 별' 그 자체였다. 찬란하게 빛나지만 절대 손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존재 말이다. 그들이 꿈에도 나올 정도로 열성적으로 챙겨보다가.... 결국 눈이 나빠져 버렸다.


수업 시간 칠판도 흐리게 보이고 책을 보아도 전처럼 글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도로 표지판과 상점의 간판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떠보기도 하고, 크게 떠보기도 하였지만 소용없었다. 눈이 더 불편하게 느껴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혜정이가 안경을 쓰고 온 날부터였다. 안경 쓴 혜정이는 전과는 다르게 지적이고 똑똑하게 보였다. 안경을 벗어 닦는 모습조차도 그 아이의 특별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나도 안경을 쓰면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아빠께 용기 내어 말씀드렸다. "아빠 눈이 잘 안 보여요. 칠판에 글씨도 잘 안 보이고, 가게 간판도 잘 안 보여요." 그랬더니 아빠는 신문의 작은 글씨를 가리키며 "이것 좀 읽어봐라", "거기 서서 달력의 작은 글씨 읽어봐라"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은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미간에 주름을 만들던 아빠가 말했다. "안 좋은 눈을 방치하면 안 될 것 같다. 내일 안과에 가보자."


다음날,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 도착한 곳은 큰 시내의 안과였다. 시력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더니 내 시력 양쪽이 0.7이란다. 여기에서 관리를 잘 못하면 더 나빠질 수 있으니 TV를 가까이서 보거나 너무 많이 보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안경을 맞춰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저녁시간에 아빠가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얀느가 눈이 나쁘다고 한다. TV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으니 얀느는 오늘부터 1년간 TV 시청을 금지한다. 얀느 혼자 TV를 안 보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에 가족 모두 TV를 보지 않기로 한다!" 어머나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사랑하고 동경하고 흠모하던 TV를 못 보게 된다니. 안경을 쓰고 싶은 열망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너 때문에 TV 못 보게 되었잖아! 괜히 눈은 나빠져가지고... 네가 알아서 적당히 봤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언니들의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그날부터 정말로 우리 집에서는 TV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뉴스 소리를 제외하여,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비공식적으로 아빠가 외출하면 언니들은 안방에 모여들어 TV를 틀었다. 나는 출입 금지였지만 혼자 다른 방에 있으면 무섭다며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사정해 들어 갔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절대 TV 화면을 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언니들이 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TV 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내 마음을 언니들은 알고 있었을까?


아무런 변수 없이 정말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아빠와 나는 안과에 다시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력 검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내 양쪽 시력이 1.5가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빠는 TV 금지령 해제를 선포했다. 1.5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조건하에 말이다. 몰래 보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볼 수 있게 되어 식구들 모두가 환호했다.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하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TV를 틀었다. 그러고는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광고음악이 흘러나왔다. 아!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었던가. 정말 그리웠어. 너무 행복해!


신기하게도 그 후 30년 동안 아무리 눈을 혹사시켜도 시력이 1.5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겪으면 마음이 단단해진다고 하던데 내 시력도 고난의 1년을 보내며 단단해졌던 것일까? 나는 그 1년으로 단단한 시력을 얻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책 읽기였다. 내가 좋아하던 것은 단순히 TV 영상이 아니라 재미있는 스토리였던 것이다.


책 속에는 만화나 드라마 못지않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다. 그렇게 나의 TV 시절이 끝이 나고 책 읽기의 시절이 도래했다. 책 읽기는 내가 외로울 때에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힘든 시기에는 위로를 건네주기도, 지혜와 깨달음을 주기도 하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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