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by 얀느

이름을 바꿔볼까 생각 중이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여태껏 살아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한 어릴 적부터 그랬다. 동네 친구인 지영이, 혜진이, 은영이에 비해 내 이름이 꽤나 올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애용했던 보석을 생각해보면 부모가 아이 이름에 ‘옥(玉)’을 넣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좋은 이름 지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옥'은 우리 엄마나 이모 뻘에서 많이 쓰던 글자였다. 옥분, 옥화, 옥경이, 옥이 이모처럼 말이다.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없다.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문중의 항렬자를 따라야 했다. 아버지 다음 대에서 남자 이름에 '제', 여자 이름에는 '옥'이 들어가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4형제 중 막내였는데 큰아버지와 나이 차가 많은 데다가 늦은 결혼으로 큰 아버지의 손녀와 내 나이가 같아져 버렸다. 큰아버지의 딸과 내 이름 항렬자가 똑같이 '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초등학교 내 친구들 이름은 지영, 희정, 은희, 나영, 은영, 혜영, 혜진 같은 이름이었는데 내 이름은 玉美였다.


이름에 '옥'이 들어있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여섯 자매의 돌림자가 '옥'이었다. 이름에 대한 불만은 나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언니와 동생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돌림자가 '옥'이 아니라면 어떤 글자가 적당한지 자주 논쟁을 벌였다. 뒷글자를 그대로 두고 앞 글자 '옥'만 바꿔보는 것이다. 여러 글자를 다 넣어봐도 '옥'이란 글자만큼 이름을 촌스럽게 만들지는 않았다. 앞 글자 '옥'을 그대로 두고 뒷글자를 무한히 바꿔보아도 한결같이 이름이 촌스러웠다. 옥심, 옥현, 옥실, 옥자, 옥란, 옥화, 옥주, 옥정, 옥미, 옥이... 이랬다.


'옥'에 생각나는 글자를 모두 붙이다 보면 어렵지 않게 우리 여섯 자매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이다.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학창 시절 새 학기에 친구를 만들기 위해 이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우리 자매들 이름 맞추기를 한다던지, 앞 글자나 뒷글자를 바꿔서 좀 더 나은 이름으로 바꿔 보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내 앞자리, 옆자리 친구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우리 자매들의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결국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내 이름에 대한 불만은 또 있었다. '옥'다음에 오는 '미'때문에 내 이름은 '옹미'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교수님이 "혹시 가운데 이름 한자가 할아버지 옹翁이나?" 물었던 후로는 내 이름을 말할 때 '옹'이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옥! 미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때 외국인 친구들은 나를 오쿠미라고 불렀다. 일본 이름 같아서 지금은 '온미'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나도 자연스럽게 발음할 수 있는 예쁜 이름 하나 갖고 싶었다.


내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누가 봐도 안타까운 이름이 있으니 바로 내 동생이었다. 아들을 바라던 아빠의 실망감을 이름에 고스란히 드러낸 것 같이 '옥'에다가 '계집녀女'를 붙여놨다. 발음하면 '옹녀'가 되어버렸다. 홍길동만큼이나 우리에게 인지도가 높은 '변강쇠와 옹녀'로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이름이기에 동생 이름을 들으면 열이면 열 명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설마 옹녀라고? 거짓말이지?" 심지어 그 애는 MZ세대에 포함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그랬다.


동생이 이름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 감수성 예민한 학창 시절 동생과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명의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던 친구였는데 성도 특이해 이름 석 자를 들으면 잊히지 않을 이름이었다. 이름 스트레스는 그 친구가 많이 받았을 거라던 동생은 결국 서른이 넘어서 개명했다. 30년 넘게 쓰던 동생의 옛 이름이 잊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랐다. 새로운 이름이 동생의 세련된 이미지와 훨씬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의 영향으로 내 이름도 바꿔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개명하기 위해 서류를 꾸미고, 주변에 알리는 수고까지 감당할 정도로 이름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아이 낳고서 내 이름 석자를 쓸 일이 더욱 없어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주로 나는 '엄마, 경은엄마, 경은 어머님'으로 불렸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엄마들도 서로의 이름을 잘 몰랐다. 이름 대신 '지은이 엄마'로 휴대폰에 저장하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들이 점심값 정산하면서 보내준 입금자명을 보고서 '김지원이 서율엄마야?'확인하며 알아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굳이 시간과 에너지 들여가며 이름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나이 40이 지나고서 다시 내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하고, 면접 보러 다니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며 '김옹미씨, 김옹미선생님, 옹미씨'로 불렸다. 이제는 '누군가의 무엇'도 아닌 내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역할에 묻혀 사라져 가던 자아도 점점 선명해져 갔다. 잃어가던 이름을 찾으니 이제는 그 이름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냐고? 이름 불리는 횟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이름 불릴 때마다 느꼈던 옛 감정들이 되살아나 촌스럽지 않은 예쁜 이름 갖고 싶다는 열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와서 굳이 개명이 필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여태껏 40 하고도 몇 년의 인생을 살았고 운이 좋다면 또 그만큼 더 살지도 모른다. 인생의 전반은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가정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내 길을 만들어왔다. 인생 후반에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도 얹어 야무지고 재미나게 살아야지 않을까. 부모님이 주신 이름은 부끄럼없이 잘 썼으니 인생 후반을 꾸려나갈 나에게 새 이름을 선물하는 것이다. 부르기 쉽고, 불릴수록 애정이 생기는 이름,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BTS의 월드투어 콘서트에 가서 외국할머니들과 통성명하기 쉬운 이름으로 말이다. 새로운 이름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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