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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Mar 08. 2023

6개월 만의 회사 출근


1. 워킹맘 출근 신고



안녕하세요, 마케팅팀 나우나우입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을 무사히 마치고 복직하여 인사드립니다.
덕분에 건강한 아들을 출산해서 9kg까지 잘 키웠습니다.

앞으로 A 브랜드 마케팅 관련 업무는 제게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우나우 드림. 


2022년 3월,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다. 내 생애 가장 길고 강렬했던 6개월이었다. 쌓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모두 생략하고 짧은 복직 신고 내용으로만 이메일을 썼다. 수신처는 마케팅, 국내영업, 해외영업, 영업기획, 학술, 홍보, 물류팀 등 약 100여 명. 그들과 다시 연결됨으로써 나는 회사에 공식적으로 복귀한다. 설레고 후련하고 의욕적이었다. 무사히 사회로 돌아왔다는 기대감에 부풀면서도 한편엔 친정집에 남은 아이와 엄마한테 미안했다.


아니, 사실은 설레고 신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출산/육아휴직을 냈던 지난 6개월 동안 세상은 나만 빼놓고 빠르게 돌아갔다. 나 없이 어떡하냐며 걱정하던 팀장의 문의 전화는 휴직 이주일만에 끊겼다. 사내 메신저와 아웃룩엔 내가 잘 모르는 회사 및 업계 이슈가 쌓여갔다. 안부 인사 혹은 경쟁사 동향 확인 차 매일 연락하던 동종 업계 지인들의 연락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10년 차 직장인이자 한 회사 과장으로서의 내 존재감이 조금씩 옅어졌다. 이대로 영영 없어질까 봐 무서웠다. 그럴 리 없다고, 6개월 뒤 사무실의 내 자리는 그대로일 거라고 되뇌었지만 과연 나 스스로의 업무 내공도 그대로일지는 자신 없었다. 회사 내 최고라고 자부하던 업계 지식, 최신 시장 정보와 분석력이 아직 내 안에 있을까? 그렇게 자신하기에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피부는 푸석하고, 다크서클이 완연하고, 산후 탈모로 머리숱은 볼품없었다. 10년 경력의 커리어우먼은 온데간데없었다.


아기를 낳고서야 내 적성을 깨달았다. 나는 일을 해야 살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먼저 반짝반짝 빛나야지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날 닮은 아기가 너무 예쁘고 소중하지만, 나 스스로를 키우는 자아실현 역시 내겐 너무 중요했다. 엄마와 직장인을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내게 남은 옵션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워킹맘이 되기로 결심했다.

 

슈퍼우먼이 되고자 나는 불효녀를 자처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다. 어린이집보다는 같은 핏줄인 할머니의 돌봄을 구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내 모정이었다.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면 좋을까?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다가 어렵사리 운을 띄웠다.


"엄마, 나 다음 달에 복직하잖아. 그래서 민준이 어린이집 연장반 등록했어. 오전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맡길 수 있대. 그래도 일주일에 며칠만 엄마한테 맡겨도 될까?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있을 민준이를 생각하면 불쌍해서 일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


말을 끝내자마자 엄마는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삼스럽게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 당연히 엄마가 봐주려고 했어. 아직 걷지도 못하는 6개월짜리를 불쌍하게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내겠니. 엄마/아빠 둘 다 은퇴해서 이제 시간도 많잖아. 민준이 엄마가 봐줄 거야. 걱정하지 마"


감히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모정과 헌신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로 30년 넘게 근무하다가 얼마 전에 은퇴했다. 한평생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우리 삼 남매까지 키우느라 손가락부터 허리 마디마디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런 엄마한테 차마 손자까지 봐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었다. 그건 자식이자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도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를 맡기겠다는 못난 자식을, 엄마는 변함없는 모정으로 받아들여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은 너무 가벼웠다. 그 어떤 단어로도 엄마의 희생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었다. 말없이 울먹거리는 나를 엄마는 웃으면서 꼭 안아줬다. 엄마의 눈에 비친 나는 여전히 민준이와 똑같은 어린아이였다. 그것이 고맙고 안심되어서 나는 한참을 엄마 품에 안겼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남편도 불효자가 되기를 각오했다. 시댁 역시 같은 동네에 살았으므로, 친정에 일이 있을 땐 시댁에 아이를 부탁했다. 어렵게 운을 떼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시어머니 역시 자애로운 웃음으로 남편과 손자를 받아주셨다. 양가 할머니의 희생으로 엄마/아빠는 출근하고 아이는 안전과 사랑을 보장받았다. 기쁨과 설렘 그리고 고마움. 나는 밝고 따뜻한 감정을 등에 업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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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사는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



첫 출근날 아침, 오랜만에 화장을 하면서 마음이 설렜다. 블라우스와 정장 바지도 입었다. 거울을 바라보니, 6개월 전과 똑같은 커리어우먼이 보였다. 푸석한 피부와 짙은 다크서클이 조금 달라진 점이었지만 언뜻 보면 육아로 인한 것인지 혹은 전날 야근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피곤한 모습마저 예전과 똑같으니, 오히려 시간을 되돌린 듯 신기한 기분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느니,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라느니 하는 흔한 인사도 복직 날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누구보다도 팀장님이 가장 열렬히 반겼다.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면서, 자신이 업무 백업을 잘해놨으니 걱정 말라며 바로 인수인계 회의를 잡았다.


'회사는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잃어버렸던 존재감을 다시 느끼면서 근로 의욕이 샘솟았다. 나는 열정적으로 회의에 참가했다.


정신없는 오전과 점심시간을 보내고서야 겨우 혼자가 되었다. 식후 아메리카노를 즐기면서 밀린 자료를 살펴보는데 휴대폰 진동 알림이 울렸다. 친정 가족 단톡방이었다.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얼른 열어봤더니 예쁘게 활짝 웃는 민준이의 사진이었다. 맘마와 딸기를 먹는 모습, 보행기를 타고 거실을 질주하는 모습 등 사진 속 민준이는 행복해 보였다. 엄마 없이 씩씩하게 잘 지내는 아이가 너무 대견하면서도 내 빈자리가 안 느껴지는 것은 조금 서운했다. 사진으로 보니 새삼스럽게 예쁘고 귀여웠다.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짙은 모성애가 느껴졌다. 이렇게 예쁜 내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고 싶었다. 아쉬운 대로 사진을 쓰다듬고 있는데, 뒤이어서 친정 엄마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민준이 밥 잘 먹고 응가도 시원하게 하고 이제 막 잠들었다. 으깬 바나나에 물 조금 섞어주니까 아주 좋아하더라. 민준이 온다고 아빠가 새 장난감을 사 오셨는데 별로 흥미를 안 보여서 아빤 삐지셨다. 다른 거 사주겠다고 열심히 인터넷 검색 중이다. 애기 잘 놀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첫 출근 잘하고 오렴.'


혹시라도 애기가 걱정될까 봐 염려했는지 엄마는 '애기 잘 지낸다'는 6글자를 길고 자세하게 풀어서 알려주셨다. 사려 깊은 배려에 또 한 번 눈물이 핑 돌았지만 회사라서 꾹 참았다. 고맙다고 답장한 후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속이 따뜻해지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오랜만의 근무였음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고 얼굴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실감했다. 엄마와 아기의 지원을 결코 헛되게 쓰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 다시 집중해서 서류를 읽어나갔다.


저녁 6시 반,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를 아기가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엄마 왔다!'는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울먹거리며 보행기를 굴려서 달려왔다. 나도 같이 울면서 아기를 끌어안고 감격의 모자 상봉을 했다. 친정 엄마는 옆에서 눈을 흘기며 손주 봐준 공은 하나도 없다고 그저 웃으셨다. 자식과 손주를 모두 지켜냈다는 뿌듯함의 미소였다. 그런 엄마가 너무 고마워서 아기를 안고 달려가 함께 안겼다. 엄마는 우리를 안고서 둘 다 수고했다고 말했다. 나도 엄마를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날 다시 일하게 해 준 우리 엄마와 아기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오늘 하루, 아주 행복한 첫 출근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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