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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나우 Apr 25. 2023

과장님의 하루 루틴은 어떤가요?


1. 과장님은 하루 루틴은 어떤가요?



전무와 팀장이 모두 휴가였던 무두절(두목 없는 날), 같은 팀 여자 대리와 함께 회사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평일 오후의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 커피를 즐기는 모처럼의 여유였다. 나른하게 풀린 얼굴로 창 밖을 보는데, 앞에 앉은 대리가 말을 걸었다.


"과장님은 하루 루틴이 어떻게 되세요?"


무슨 말인가 싶어서 대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궁금함과 공허함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 없는 분위기를 전환하는 동시에 평소 회사에선 물어보기 어려웠던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나 보다. 대리 나이가 34살이니 슬슬 결혼을 생각하는 걸까? 사회생활 선배로써 워킹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꽤 심플해요. 집순이 생활에 육아가 추가된 집/회사 루틴이랄까? 아침에 애기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친정으로 하원한 애기 찾아오고, 남편이랑 같이 놀아주다가 밤 9시쯤 육퇴(육아퇴근)해요. 그럼 남은 자유시간이 3시간 정도? 남편이랑 같이 맥주 마시면서 넷플릭스 보거나 아님 혼자 책 보고 게임하다가 12시쯤 자요."


최대한 건조하게 '별 것 아니다'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말해놓고 보니 꽤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가끔 회사 일이 바쁘거나 아이가 너무 칭얼대면 도망치고 싶을만큼 힘들지만, 또 다른 날엔 날 닮은 아이가 너무 예뻐서 가슴 뻐근하게 행복했다. 모든 일상이 해야할 일과 다양한 감정으로 꽉 찼다. 쏟아지는 일과를 쳐내다보면 금세 밤이 왔다. 아이를 재우고 비로소 조용해진 거실 소파에 앉으면 피로와 보람이 밀려왔다. 무사히 하루를 마친 스스로가 대견했다. 지금 같은 성취감을 매일 밤 누릴 수 있다면 워킹맘의 삶도 할만할 것 같았다.


내가 느낀 보람과 성취를 후배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리는 여전히 공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도 과장님은 친정에서 도와주니까.. 저희 언니가 작년에 아기를 낳았는데요, 친정/시댁이 전부 지방이라서 도움을 못 받았어요. 육아휴직하고 언니 혼자 아기를 돌보는데 엄청 힘들어하더라구요. 1년 내내 고생하다가 이제 회사로 복직하는데, 일하는 동안 애기는 어떡할지 고민 중이예요. 베이비시터를 구하자니 불안하고, 어린이집 종일반을 보내자니 하루종일 밖에 있을 아이가 불쌍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언니를 보니까 저도 마음이 안좋아요. 우리 나라는 아직 일하면서 엄마 노릇하기가 많이 어려운 것 같아요."


대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콱 박혔다. 그녀는 정말로 내 일상이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주변 지인과 인터넷에서 익히 들어온 워킹맘의 고단함과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자신도 동일한 삶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자신 없음을 얘기하고,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어 했다. 나는 섣부른 지레짐작과 무책임한 긍정론 전파를 후회했다. 현실적인 답변을 들려주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신중하게 말했다.


"대리님, 저는 운 좋게 친정/시댁이 전부 신혼집 근처라서 부모님들께 육아 도움을 많이 받아요. 혹시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최소 신생아 때만이라도 양가 부모님이 신혼집으로 출퇴근 하시거나 혹은 잠깐 같이 살면서 도움을 주시더라구요. 나이든 부모님께 황혼 육아까지 부탁드려서 죄송하지만, 눈 딱 감고 불효를 각오했어요. 저희 부부 힘만으로는 힘들어서요. 대신 유연근무제나 재택근무 등 최대한 빨리 퇴근해서 아이를 찾아오려고 노력해요."


대리의 눈에서 공허함이 조금 사라졌다. 그만큼 더 진지한 눈빛으로 내가 말했다.


"완벽한 회사 일과 육아 욕심도 내려놨어요. 휴직 때 육아 책을 많이 읽었는데, 해외에는 적당히 괜찮은 엄마(Good enough mother, 도널드 위니콧)라는 개념이 있더라구요. 적당히 괜찮은 직장인과 엄마를 목표로 해야지만 엄마 개인의 삶도 챙길 수 있대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 정서에도 좋구요. 그러니까 엄마/아빠 대신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 가까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야 해요. 그래야 워킹맘이 돼서도 내 삶을 같이 챙길 수 있어요."


대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입은 웃지만 눈빛은 여전히 자신없어 보였다. 나도 말을 멈추고 함께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해결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말은 어설픈 충고가 될 것이기에, 대리 혼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조용히 옆을 지켰다. 햇볕이 잔잔하게 내려앉는 오후의 거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말없이 남은 커피를 마셨다.



2. 초보 워킹맘의 일상



1년 전, 나는 6개월 간의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6개월짜리 아이는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하루종일 어린이집에 보내기엔 너무 안쓰러웠고, 그렇다고 휴직을 연장하자니 그만큼 잃어버릴 내 현장감각과 커리어가 아까웠다.


61세의 친정엄마는 36살 철없는 딸을 위해서 기꺼이 황혼 육아를 맡아주셨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아서 친정집에 아들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출근했다. 출근길은 엄마에서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30분 동안 책을 읽고 브런치에 글을 썼다. 회사에 도착할 즈음엔 사회적 성공을 꿈꾸던 싱글일 때의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민준 엄마'는 사라지고 '직장인 나우나우'만 남았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했다.


육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일에 재미를 더해줬다. 회사 일은 가시적인 목표가 분명해서 좋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글과 숫자로 정리되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어른들의 대화는 진중하고 성취 지향적이었다. 주어지는 일을 처리하면서 오랜만에 뿌듯한 자기효능감을(Self-efficacy)를 맛봤다. 나는 더 이상 미숙한 초보 엄마가 아니었다. 10년 경력의 노력한 직장인이자 여러 후배들의 멘토였다. 나는 집보다 회사에서 더욱 빛나는 사람이었다.


낮 동안 반짝였던 유능감은 저녁 퇴근을 기점으로 점점 작아졌다. 퇴근길 지하철은 유난히 피곤했다. 회사에서 쌓인 피로감과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셨을 친정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온몸을 덮쳤다. 하루종일 못 본 아이도 보고 싶었다. 피로감, 죄책감 그리고 그리움. 여러 가지 감정에 밀려서 친정집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자 아들과 친정엄마가 활짝 웃으면서 나를 반겼다. 그제야 나는 다시 '민준 엄마'로 돌아왔다. 마음 한 켠에 걸려있던 모성애가 폭발하면서 회사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오늘 내내 엄마 품이 그리웠을 아이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내주었다. 나를 이 세상의 전부인양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에서 순수한 사랑과 가슴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 나와 아이는 서로의 우주이자 신이었다.


아름다운 신앙심은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본격 육아를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엄마/아빠가 그리웠던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계속 놀아주길 바랐다. 밥 먹이고, 씻기고, 로션과 아토피 약을 바르고 밤잠을 재우는 모든 순간마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했다. 나와 남편은 남은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짜서 아이에게 사랑을 채워줬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저녁 9시, 아이가 완전히 잠들고서야 드디어 육퇴(육아 퇴근)를 할 수 있었다. (가끔 운이 없을 땐 10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했다.) 우리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여가 시간을 맞이했다. 남편이 맥주를 마시면서 넷플릭스를 보는 사이, 나는 남편에게 기대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혹은 서재에서 혼자 책을 봤다. 12시쯤 잠자리에 들 때, 우리 세 식구는 가장 평화로웠다. 아이는 편안한 얼굴로 잠들었고,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는 만족감으로 뿌듯하고, 나는 일과 가정을 모두 지켜낸 성취감으로 충만했다.


.. 가장 평안할 때의 우리 집 루틴이다. 아이가 건강하고 회사 일도 원활할 땐 세 식구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다. 집/회사/육아 삼 박자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다. 단, 어쩌다 한 박자만 삐끗해도 조화로움은 깨지고 평화롭던 일상은 위기를 맞이했다. 위기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했다.



3. 육아 돌발 변수 - 아이가 아프다



회사에 복귀한 지 한 달쯤 됐을 때다. 그동안 엄마와 직장인을 넘나들며 집/회사/육아 루틴을 막 완성하고 워킹맘 노릇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을 때였다. 아이는 할머니/할아버지의 보살핌 아래 무럭무럭 잘 자랐고 나 역시 회사 생활에 한참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뭔가 낑낑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애가 또 깼나 보네' 싶어서 등을 토닥이는데 아이 상태가 이상했다. 칭얼대지도 않고 그저 옆으로 누워서 끙끙 소리만 냈다. 이마를 짚어본 손이 뜨거웠다. 부리나케 체온계를 가져와서 온도를 쟀다. 38.8도. 생전 처음 보는 높은 온도에 깜짝 놀라서 방에 불을 켰다. 아이는 고열 때문에 벌게진 얼굴로 눈도 못 뜬 채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혼자 낑낑댄 건지 몸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대체 엄마라는 사람이 왜 이제야 눈치챈 건가? 아이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급하게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오면서 남편을 깨웠다.


"오빠, 일어나 봐! 민준이 열나. TV 서랍장에서 아기 해열제 좀 갖다 줘."


남편이 약을 먹이는 사이 나는 핸드폰으로 열나는 아이에게 취할 방법을 검색했다. 생후 6개월 이상 아이에게는 2시간마다 두 종류의 해열제를 교차복용하면서 미온수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가재수건에 따끈한 물을 적셔서 아이의 목덜미와 겨드랑이를 닦았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엄마 품으로만 파고들었다. '싫어도 해야 한다'며 아이와 씨름하는데 남편이 옆에서 말렸다.


"여보, 민준이가 너무 싫어하는데 이건 하지 말자. 약 먹였으니까 나아질 거야. 일단 재우자."

"알겠어, 오빠.. 39도 넘으면 응급실 가라는데, 1시간마다 체온 재야겠어. 다행히 해열제는 두 종류 다 있네. 내가 먼저 보초 설 테니까 오빠 먼저 자."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


아이와 함께 남편을 먼저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깜깜하고 적막한 창 밖을 바라보면서 자책했다. 언제 감기에 걸렸을까? 아토피를 잡는다고 방 온도를 너무 낮춰놨나? 진짜로 39도 넘어가면 어떡하지? 초조하게 1시간을 겨우 버틴 후 다시 체온을 쟀다. 38.6도. 살짝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고온이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다시 거실로 나와서 '고열 아기 응급실'을 인터넷 검색했다. 소아 응급을 받아주는 병원이 별로 없으니 차라리 119에 전화해서 입실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고 움직이라는 조언이 많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인근 병원 응급실을 찾아놨다.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체온계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체온을 쟀다.


'37.8도'


드디어 미열로 떨어진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계속 재울지 아니면 다른 해열제로 교차복용을 할지 고민하는데,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민준이는 좀 어때?"

"38도 밑으로 떨어졌어. 근데 아직 미열 상태라서 약을 좀 더 먹일까 봐."

"그래. 약 먹이고 민준이 이제 내가 볼게. 나우나우도 좀 쉬어."

"아냐, 괜찮아. 어차피 걱정돼서 잠은 못 잘 것 같아. 민준이 계속 내가 볼 테니까 오빠라도 푹 자둬.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남편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 약 먹이는 것을 도와줬다. 잠든 아이 입술을 살짝 벌려서 뾰족한 약병 주둥이로 해열제를 조금씩 흘려 넣었다. 아이는 칭얼거리면서도 약을 다 먹었다. 새벽 내내 1시간마다 아이 체온을 쟀다. 아이는 밤새 37.7~38.5도를 넘나들었다. 다행히 39도를 넘기진 않았다. 덕분에 119를 부르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 어느덧 아침 해가 밝아왔다.


오전 9시, 회사에 반차를 내고 소아과 문을 열자마자 입장했다. 의사는 아이 증상을 듣고는 코, 목, 귀를 살피더니 요새 유행하는 코감기와 중이염에 걸렸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면 원래 자주 아파요. 엄마한테 받았던 면역력을 다 쓰고, 이젠 스스로의 힘으로 외부 환경과 싸우는 시기거든요. 커가는 과정이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밥이랑 약 잘 챙겨 먹이세요."


병원 진료를 받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진찰 내내 엉엉 울던 민준이는 병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언제 울었냐는 듯 신나게 주변을 구경했다. 살짝 붓고 벌건 얼굴이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혼자 신났냐고 잠깐 불평했다가, 그래도 잘 크고 있는 아이가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웃으면서 꺅꺅 소리를 냈다.


민준이의 감기는 2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나았다. 힘들고 고된 2주였다. 열이 내리면 코가 막혀서 밤에 잠을 못 잤고, 코가 덜 막히면 기침을 하는 통에 자주 칭얼댔다. 나와 남편 역시 민준이와 함께 잠을 설쳤다. 졸리고 피곤한 상태로 집/회사/육아 루틴이 계속됐다. 엄마가 지치면 아빠가, 아빠가 지치면 엄마가 대신 루틴을 지탱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2주 뒤, 드디어 민준이의 감기가 나았고 엄마/아빠의 생활력은 한층 강해졌다. 우리 가족의 일상 루틴은 더욱 단단해졌다.



4. 워킹맘의 하루 루틴은 범위가 넓다.



소아과 의사 말이 맞았다. 첫 감기 이후, 민준이는 매월 새로운 유행병과 싸우면서 스스로의 면역력을 키웠다.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면서 항상 약을 달고 살았다. 이제 겨우 2살 아이에겐 힘든 과정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항상 즐겁게 지냈다. 콧물을 흘리면서 신나게 놀이터를 질주하고, 열에 달뜬 얼굴로 칭얼대다가도 엄마/아빠가 놀아주면 환하게 웃으면서 기뻐했다. 좋든 싫든 일상의 모든 변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쑥쑥 성장했다. 어린아이의 밝고 유연한 태도는 어른인 엄마/아빠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나와 남편 역시 아이와 함께 성장했다. 이젠 '민준이 열난다'는 어린이집 알림에도 당황하지 않고 번갈아 반차를 쓰며 병원으로 데려가는 능숙함을 갖췄다. 어차피 워킹맘/파파의 삶은 예측 불가능하니 작은 돌발 변수 정도는 육아 루틴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줄어서 피곤함도 덜했다.


민준이를 낳기 전, 나는 항상 일정한 생활 루틴을 선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고 주말 하루는 꼭 중랑천을 산책해야지만 매일 & 매주가 계획한 대로 잘 흘러갈 것 같았다. 예측 가능한 환경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좋아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으로 루틴이 깨졌을 땐 그날 하루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다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화로운 일상의 위협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가 된 지금은 일상 루틴의 범위를 훨씬 넓게 설정했다. 집/회사/육아의 큰 틀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사건사고는 일상의 평화를 해치는 위협이 아니라, 그것 역시 루틴의 일부라고 받아들였다. 아이가 기고, 걷고, 뛰어다니며 성장할수록 하루하루의 육아가 달라질 것이기에, 내 생활 역시 아이의 성장에 맞춰서 바뀔 수밖에 없다. 눈앞에서 바라본 아이의 성장은 기쁨이자 축복이었다. 그로 인한 환경 변화는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닌 행복으로 다가왔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을 성장이라고 한다면, 부모인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


최근 민준이가 재접근기(생후 16~18개월 아이가 주양육자만 찾으면서 보채는 시기)에 접어들면서 또다시 루틴 변화가 생겼다. 어린이집 등원할 때 웃으면서 '빠이빠이'를 하던 착한 아이는 사라지고, 나만 두고 어딜 가냐며 울고불고 칭얼대는 어린 아기로 돌아갔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는 마음이 무겁고 힘들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초연함이 생겼다. 오늘 쌓은 하루가 우리 가족 모두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루틴을 지키고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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