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전거, 발목 골절, 뒤늦은 후회
발목이 부러져서 수술을 받았다. 남편과 함께하는 모처럼의 오후 반차가 너무 신나서, 따릉이를 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결국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이 깔렸고, 순간 눈앞이 까매지면서 반짝반짝 별이 떴다. 병원에서 '좌측 발목 외과 골절'이란 진단명과 함께 '완전 절개 및 철심 교정'이란 처방을 받았다. 전신마취에 일주일 입원이 필요한 큰 부상이었다. 바로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MRI, CT,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우리 민준이는 어떡하지?'
내 몸과 회사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30대의 젊음으로 발목이야 어떻게든 회복될 것이고, 회사엔 병가와 재택근무를 신청해야겠다는 빠른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18개월 아기 민준이의 육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엄마한테 부탁할까? 요새 건강도 안좋다는데 하루종일 민준이를 봐줄 수 있을까? 어린이집 등하원은? 제일 빠른 등원이 7:30인데 남편 출근 시간 조정이 가능할까? 그보다 밤잠은? 남편이 잘 재울 수 있을까? 어떡하지?'
남편에게 맡기자니 애와 남편이 둘 다 불쌍하고, 그렇다고 친정 엄마한테 부탁하자니 죄송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울 것처럼 심각한 얼굴을 보고 남편이 말했다.
"나우나우, 괜찮아? 발목 많이 아파?"
"응 괜찮아. 별로 안 아파."
"다행이다. 근데 나우나우 회사는 어떡하지? 이번 주말에 출장도 있잖아."
남편의 고민 우선순위는 나와 달랐다. 그는 내 몸과 스케줄부터 걱정했다. 아내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 남편의 자상함이 고마웠고, 한편으론 주양육자와 부양육자 사이의 책임 간극이 느껴졌다.
"출장이야 팀장이 대신 가면 되고, 회사엔 병가랑 재택근무를 신청할 거야. 작년에 옆 팀 사람이 쇄골을 다쳐서 재택근무했던 선례가 있었거든. 이따 팀장한테 전화하려고."
"응, 그래도 나우나우는 회사 복지가 좋아서 다행이다."
"오빠, 난 그것보다 민준이가 제일 걱정이야. 당장 입원 일주일 동안 어떡하지? 오빠 회사는 재택 아예 안돼?"
"우리 회산 재택 안돼. 코로나 끝나고 아예 폐지됐어. 어린이집 제일 빠른 등원 시간이 언제지? 내가 민준이 데려다주고 밤에 찾아올게."
"제일 빠른 등원시간이 7:30인데 오빠는 더 빨리 출근하잖아. 연장반 제일 늦은 하원은 19:30이야."
"내가 출퇴근 시간 조정할 수 있는지 회사에 한 번 물어볼게."
"아냐.. 조정하더라도 민준이 아직 어린데 어린이집에 12시간씩 있긴 힘들어. 엄마한테 부탁해볼게."
"장모님 혼자 힘드실 텐데, 괜찮을까?"
남편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내 양심을 찔렀다. 나도 안다. 나이 든 엄마 혼자서 혈기 왕성한 18개월 남자아이를 돌보는 것은 고행이다. 하지만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엄마의 도움이었다. 사위만도 못한 불효녀가 되었다고 자책하며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상황을 설명하며) 나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엄마가 민준이 봐줘야지. 그래야 너도 맘 편하게 입원하지. 민준이 친정에서 재우면서 어린이집 등하원 시킬거니까 걱정하지 마. 다만 엄마 약속 있을 땐 사위가 휴가 내거나 아니면 사부인한테 부탁드려 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엄마는 내 전화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묵묵히 받아주셨다. 결혼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친정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엄마 같은 진정한 엄마는 아직 되지 못했다. 언젠간 나도 민준이의 빛이자 구원이 되어줄 수 있을까? 전혀 자신 없다고 생각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남편도 통화 내용을 전해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날 대신해서 말했다.
"장모님 진짜 대단하시다. 걱정 마, 혼자 힘드시지 않도록 내가 잘할게!"
2. 육아 프리(Free) = 쾌적한 입원 생활
입원 생활은 의외로 쾌적했다. 휴가를 낸 덕분에 귀찮게 구는 업무 전화도 없었고 삼시세끼 밥과 모든 일상 새생활을 간호사가 도와줬다. 가장 큰 장점은 밤에 푹 잘 수 있는 것이었다. 숙면을 방해하는 칭얼거림 없이 모처럼 개운하게 잘 잤다. 애엄마로써 육아 프리(free) 상태가 된 편안함이 좋으면서도 한편엔 죄책감이 느껴지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어쨌건 출산 후 18개월 만의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갤럭시탭으로 책을 실컷 보다가 피곤하면 낮잠을 잤고 저녁엔 넷플릭스를 봤다. 발목뿐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 건강이 회복되는 마법의 시간이었다.
편안한 시간을 즐기는 와중에도 문득 아이 생각이 났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엄마 캐릭터가 나올 때, 그리고 친정엄마로부터 민준이의 예쁜 사진과 동영상 메시지가 올 때 특히 그랬다. 정점은 영상 통화였다. 화면 속 민준이가 '엄마 왜 거기 있어!?'라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엄마엄마 부르면서 손가락을 빨 때면 '내가 많이 그립구나' 싶어서 미안함이 울컥 올라왔다.
"민준이, 엄마 많이 보고 싶어요? 내일 토요일이니까 아빠랑 같이 면회와요~ 엄마도 민준이 너무 보고 싶어요. 우리 내일 꼭 만나요. 알겠지? 약속~"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한 표정에 혹여 눈물을 보일까 싶어서 '안녕~'하고 얼른 끊었다.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한 아이를 두고 그저 내 몸이 편하다고 즐거워하다니.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소리 없이 눈물을 찍어내는데, 혈압과 체온을 재러 간호사가 왔다. 왜 우냐는 말에 '애기랑 영상통화 했어요'라고 대답하니 '아이고' 웃으며 얼른 할 일을 마치고 자리를 비켜줬다. 칸막이 커튼을 치고 마음을 추스르는데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민준이 방금 양서방(남편)이랑 같이 돌아갔다. 아빠 보니까 얼굴 표정이 어찌나 밝아지는지, 할머니랑 이모가 아무리 잘 놀아줘도 결국엔 엄마아빠 역할이 따로 있는 거야. 오늘따라 손가락을 더 많이 빨더라. 엄마가 그리운 거 같다. 내일 애기 만나서 잘 달래줘라."
엄마 전화를 받고 또 울었다. 보고 싶은 내 아기. 얼른 내일이 되면 좋겠다.
3. 짧고 강렬했던 모자 상봉
민준이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새벽같이 일어났다. 6시에 깼지만 다시 잠이 오질 않았다. 포기하고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로 했다. 평소보다 꼼꼼히 세수하고 로션을 발랐다. 감지 못해서 떡진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열심히 빗질해서 꽁지머리로 묶었다. 면회까진 아직 4시간이나 남았는데.. 넷플릭스를 보고 낮잠도 자면서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다.
10시 50분쯤, 남편한테 카톡이 왔다.
'민준이랑 주차장 도착'
부랴부랴 핸드폰 셀카 모드로 얼굴을 한 번 더 점검하고 휠체어를 펴서 병실 밖으로 나갔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입원 3일간 육아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참 좋았는데, 속으로는 아이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병원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려서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르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토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 속에서 어떻게 찾지 하고 잠시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바로 남편 목마를 한 민준이를 찾았다. 병원이 신기한지 신나게 구경 중인 민준이를 향해서 크게 불렀다.
"민준아!"
익숙한 목소리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민준이는 고개를 휙휙 돌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며칠 못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목마를 탄 아이의 높은 시선과 휠체어를 탄 엄마의 낮은 시선이 드디어 마주쳤다. 민준이의 입에서 '엄마'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기는 달라진 내 모습에 눈이 커지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병원복을 입고 다리엔 붕대를 감은 채 휠체어를 탄 모습이 낯설었나 보다. 왼쪽 손목으로 이어지는 링거줄도 신기한 듯 한참 만지작거렸다. 어색하고 신기한 와중에도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계속 '엄마'를 부르며 아픈 곳에 호-를 해줬다. 오랜만에 엄마 품에 안겨서 겨드랑이에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있는 내 아기. 평소처럼 버둥거리지 않는 것이 아픈 엄마를 보호해주는 아기의 배려 같다. 고맙고 미안하고 기특해서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표정만은 환하게 웃는 얼굴만 보여주고 싶었다.
"민준아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 엄마도 민준이 너무너무 보고싶었어!"
아직 '응'이란 말을 할 줄 모르는 민준이는 고객을 더욱 깊게 파묻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부둥켜 안고 모자 상봉의 감동을 나눴다.
감격의 순간은 5분 만에 끝났다. 꼼짝없이 안겨 있는 것이 지루해진 아기는 이제 충분하다는 듯 '으응!'이라 말하고 내 품을 벗어났다. 그리곤 병원 복도를 냅다 달리면서 신난다는 '아우' 소리를 내질렀다. 저러다가 다른 환자랑 부딪치면 둘 다 다칠 것 같았다. 결국 면회 20분 만에 민준이는 아빠한테 안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첫 5분의 감동과 남은 15분 동안 뛰어다니는 아기 뒤통수만 기억되는 면회였지만, 얼른 나아서 퇴원하겠다는 쾌유 의지를 불태우는데 충분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내 아이를 온전히 품에 안고 싶다.
4. 엄마를 향한 아기의 사랑이 모성애보다 강하다
퇴원 후 바로 친정집으로 갔다. 대문과 가장 가까운 거실 소파에 앉아서 이따 저 문으로 들어올 아이를 상상했다. 평소처럼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할머니와 함께 들어올 것이다. '까꿍!'하고 맞아줄까? 아님 어디에 숨었다가 '민준아!'하고 이름을 불러볼까? 어떤 얼굴을 할지 너무 궁금해서 시간이 더디게 갔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하원 시간, 나는 문 앞에서 아이를 맞이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엄마 존재를 인식했을 때의 반가운 표정을 온전히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 곧, 저 문을 열고 민준이가 들어올 것이다.
문 밖으로 웅성웅성 친정엄마와 아이 소리가 들렸다. 날 보고 울까? 환하게 웃을까? 두근대다 못해 잔뜩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띡띡띡- 도어록이 울리면서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아이 머리가 보였다. 먼저 밀어 넣은 머리를 서서히 들면서 얼굴이 보이려는 찰나, 도저히 더는 못 기다리고 아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민준아!"
가늘게 웃던 눈이 동그래지면서 정면을 향했다.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코입 모두 동그랗게 되어서 날 바라보더니, 마침내 엄마임을 알고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엄마' 한 번 부르고는 신발도 안 벗고 내게로 달려왔다. 나는 앉은 채로 민준이를 꽉 안았다. 내 목소리도 울먹였다.
"우리 민준이 엄마 많이 보고 싶었어? 엄마도 민준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엄마가 미안해."
다시 한번 꼭 안으면서 아이 얼굴에 내 볼을 갖다 대었다. 오랜만에 맡는 내 아이의 살냄새. 이제야 퇴원했음을 실감했다.
민준이는 한참을 폭 안겨있었다. 가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면서 '엄마'하고 확인하고는 다시 가슴팍으로 머리를 묻었다. 손가락을 빨면서 고개를 모로 돌리고 폭 안긴 모습이 너무 편안해 보였다. 나는 팔이 저린 내색도 못하고 한참 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오로지 내 실수 때문에 어린 민준이한테서 일주일이나 엄마 품을 뺏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쉽게 엄마를 용서해 주는 착한 아기라니. 고마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혹자는 모성애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고귀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여러 콘텐츠가 그렇게 주입하고 나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시간부로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를 향한 아기의 사랑이 모성애보다 훨씬 강하고 너그럽고 간절하다. 다시는 민준이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루한 체력을 생각해서 앞으론 도보에서 따릉이 타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