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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Nov 08. 2024

골목길 풍경

일상을 기록하는 드로잉

동네를 산책하다가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동네 미용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봄이던가, 활짝 핀 벚꽃을 보러 가는 길에 주택에 딸린 자그마한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느새 새롭게 고쳐 미용실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가게 앞과 옆에는 주인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은 화분들이 여러 개 놓여 있는 올망졸망 피어 있는 가을꽃들이 예뻐서 사진 찍어 와 그렸습니다.


지난 달만 해도 봄날 같은 가을이어서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찬바람 불기 시작한 엊그제 지나는 길에 보니 잎들은 갈색으로 말라가고 꽃들도 시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시간은 흐르는 물 같고 지나가는 바람 같아서 기다려주지 않고 멈춰서 있지 않나 봅니다.

동네 미용실 어반드로잉

키 작은 전봇대가 오래된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듯 촘촘한 전깃줄을 집집마다 연결해 주고 있는 걸 그리면서 그리고 미용실 위쪽으로 난 길을 그리면서 저는 추억에 잠깁니다.


그림 속 앞으로 쭉 걸어가면 제가 다니던 여중학교가 나오는데 40여 년 전과 같은 자리에 있는 중학교가 학창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여중이라서 11반까지 있었고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60명을 훌쩍 넘는 아이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곤 했지요.


중학교 2학년 때던가, 클럽 활동으로 7명이서 클럽을 하나 만들어 교실 한켠에 무인 판매점을 열었던 기억이 납니.


주로 학용품을 팔았는데 우리는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공책이나 연필, 실내화 등을 떼  진열놓고 사람이 지키지 않는 가게를 만들었요. 아이들 호응이 좋아서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었는데 남은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강했던 한 친구 덕분에 중학생 때 무인 판매점 해  건데 금 생각하니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께 했던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까, 추억 속 여행을 하다 보니 궁금해집니다.


미용실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으로 오르는 언덕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자리여서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신사당이라 불렸던 그 자리에 지금은 자그마한 절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산길을 오르면 약수터가 나오고 산 정상에는 정자가 지어져 있습니다.


초등 5, 6학년 즈음 겨울방학이 생각납니다. 추운 겨울 깜깜한 새벽에 아빠는 곤히 자고 있는 저와 두 살 터울 여동생을 깨워 매일 아침 등산을 데리고 갔습니다.


시린 겨울바람으로 몸이 으스스해 목을 움츠리며 잠기운이 깨지 않은 눈으로 발걸음 빠른 아빠를 쫓아가는 일은 고역이었지요. 더구나 깜깜한 새벽이라 산을 오르는 길은 너무 힘들었지요.


하지만 정상에 올라 어둠이 저만치 시라지면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좋았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이 맛에 산을 오르는구나, 느끼기도 했지요.


그리고 눈 쌓인 산길에 털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지면서 산을 내려올 때는 눈이 얼마나 부드럽게 느껴지던지요. 마치 반쯤은 날 듯이 내려왔던 거 같습니다. 스피드와 눈의 부드러움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아빠가 깨울 때의 힘듦이 상쇄되고도 남는 산행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벽마다 등산을 하며 건강을 챙겼던 아빠는 어린 자식들에게도 건강한 운동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혼자 가면 편했을 그 산길에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다녔을 겁니다. 귀찮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보람차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겨울 방학 새벽 산행이 지금은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골목길에 있는 자그마하고 소박하고 정성이 깃들어있는 동네 미용실을 그리면서 저도 소박하고 정성 어린 마음이 담겨 있는 옛 추억들을 끄집어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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