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끝난 스크린 속 바다는 아무 말이 없다. 한산 앞바다, 수장된 왜군들은 바닷속에서 고요했다. 불타고 있는 왜선과 널브러져 있는 판자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넓은 바다 여기저기에 떠 있어 전투의 마지막은 처참하다.
빼앗으려는 자, 일본의 와키자카는 탐욕으로 움직인다. 영화 <한산>에서 왜장 와키자카의 마음은 조선을 짓밟고 넓은 땅 명나라로 달려간다. 명의 땅을 선점하고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서 조선과의 전투는 그에게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지키려는 자, 조선의 이순신은 의를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움직인다. 그 안에는 짓밟힌 강산과 백성에 대한 연민이 있고 빼앗긴 바다를 되찾으려는 의지가 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구선(거북선)으로 왜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사천포 해전의 승리를 뒤로 하고 다시 왜군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은 과묵하다. 장수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하는데 듣기에 집중하고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내놓는 말은 태산같이 무겁고 신중하다.
잠자리에서 이순신은 꿈을 꾼다. 함경도 땅 여진족과 대치했던 녹둔도 전투가 배경이다. 사방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갇힌 그에게 수백 발의 화살이 쏟아진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이 깬다. 잠들지 못하는 깊은 밤, 이번 전투에서는 어떤 전략을 짜야하는지 어떤 전술을 펼쳐야 이길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하여 꿈에서 보여준 포위된 성은 바다 위의 성으로 다시 태어나 한산대첩에서 학익진이 된다.
빼앗으려는 자 와키자카도 지키려는 자 이순신도 적의 정보를 보다 면밀히 알아내기 위해 적의 진영에 세작을 보낸다. 와키자카의 세작은 구선(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친다. 왜군에게 구선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구선의 머리인 용의 얼굴이 스크린 속에서 빠른 속도로 화면 앞으로 다가왔을 때 관객인 나조차 섬뜩했다. 거대한 머리가 쿵, 소리와 함께 배를 들이받았을 때 왜군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전투에서 승리해 자신의 탐욕을 손으로 잡고 싶은 와키자카에게 구선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이순신의 세작은 항왜 군인 준사다. 그의 입을 통해 감독 김한민은 이 전쟁의 의미를 묻는다. 그리고 장군 이순신을 통해 대답한다. “그것은 의와 불의의 전쟁이다.”라고.
왜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조선 수군에게는 천군만마였을 거북선. 역사 속에서 나대용은 10여 년 동안 연구한 배, 거북선의 설계도를 들고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에게 찾아간다. 1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사천포 해전에서 구선(거북선)은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구선의 머리가 적선에 박히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제 영화는 견내량에 매복해 이순신을 유인하려는 와키자카와 좁은 견내량에서 한산 앞바다로 와키자카를 유인하려는 이순신의 치열한 전술 싸움으로 치닫는다. 빼앗으려는 왜군의 조급함과 자만은 목숨 걸고 지키고자 하는 조선의 유인책에 걸려든다. 쫓기는 척하는 조선 수군과 그 뒤를 맹렬하게 쫓는 왜군이 드디어 넓은 한산 앞바다에 다다른다.
말이 무거워 명령이 엄격한 장군 이순신의 진두지휘로 조선의 판옥선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배들을 세우고 방향을 돌려 옆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학익진 전법. 배들이 모여 바다 위에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왜선들은 포위된다. 판옥선에 탑재되어 있는 대포들이 왜선을 향해 불을 날린다. 바다 위의 성에 갇혀 도망갈 길을 잃어버린 왜선들은 부서지고 불에 탄다. 와키자카 역시 분노에 휩싸여 총공격을 퍼붓는다.
싸움이 치열해지는 동안 스크린은 저 멀리서 왜선를 깨부수며 등장하는 구선을 보여준다.구선은 왜선에 접근해 부수고 공격한다. 왜군 또한 구선을 부수려 달려드는데 갑자기 구선의 머리가 사라진다. 아니, 안으로 들어가 숨는다. 나대용이 재개발한 새로운 형태의 구선이다. 왜선에 접근해 쳐부수는 공격력과 머리를 감추는 기술로 방어력까지 갖추었다. 구선의 활약과 학익진 전법으로 한산대첩은 조선이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
지키려는 자들은 고향과 가족과 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으므로 그들의 지킴은 절박하고 치열하다. 그래서 두려움을 물리치고 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는다. 지키려는 의지, 지키고 싶은 마음, 사지에서 목숨을 내놓는 그 마음으로 이기고 지켜낸다. 지키려는 자들이 지켜낸 기쁨으로 내지르는 함성이 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들의 승리에 내 심장이 환호한다.
1592년 7월 8일(양력 8월 14일) 한산도 전투에서 왜선 73척 중 59척이 상실되었다. 조선 수군의 전선 50여 척은 파손되지 않았다. 완벽한 조선의 승리다.
영화 속에서 왜장 와키자카는 바닷속으로 사라졌지만 역사 속에서 와키자카는 살아서 김해로 도망했다.
빼앗으려는 자에게 도망은 삶의 수단이다. 살아서 빼앗으려는 욕망이 그들을 도망치게 만든다. 빼앗으려는 자들의 작은 탐욕은 바닷속에 수장되었지만 와키자카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살기 어린 탐욕은 그들이 살아있음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산대첩의 완벽한 승리로 남해 바다는 더 이상 적의 바다가 아니다.
전쟁은 탐욕이 집단적 광기로 발현되어 모든 사악한 형태의 것으로 나타난다. 탐욕으로 가득 찬 빼앗으려는 자의 마음은 음모와 배신, 살인과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는 빼앗으려는 자들의 탐욕 속에서 피를 흘린다.
피 흘리는 강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키려는 자가 된다. 가족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고 백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 지키려는 자들의 의로운 희생 속에서 인간은 다시 한 번 숭고해진다. 김한민 감독이 한산대첩에서 장군 이순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 한 영화 <한산>의 울림은 그래서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