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면 친정 엄마는 해마다 배추를 100포기 사서 김장을 하셨다. 거의 혼자서 그 많은 배추를 씻고 절이고 날랐다. 가까이 사는 나는 항상 일이 바빠서, 멀리 사는 여동생은 거리가 멀어서 늦게야 도착하곤 했다. 엄마는 거실 한가운데 커다란 김장 매트를 깔고 젓갈과 마늘과 생강이 들어간 양념 간 그리고 채 썬 무, 갓과 쪽파를 넣고 김칫소를 버무렸다. 위에서 아래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고무장갑을 낀 엄마의 손은 하얗게 채 썬 무가 빨갛게 변하고 초록빛 갓이 빨간색 옷을 입을 때까지 쉼 없이 움직였다.
엄마의 노동력 덕분에 까나리 액젓과 멸치액젓과 새우젓이 서로 섞이고 마늘과 생강과 매실청과 고춧가루가 섞이고 무와 갓과 쪽파와 대파가 섞여서 김칫소는 어느새 빨갛게 영롱한 빛깔을 띠었다. 엄마가 만든 김칫소를 가지고 다 모인 우리는 고무장갑을 하나씩 끼고 김치통도 하나씩 옆에 가져다 놓고 배추에 김칫소를 넣기 시작했다. 연한 배춧잎을 하나 떼어 맛을 보기도 했다. 아삭아삭거리던 잘 절여진 배춧잎과 감칠맛 도는 고춧가루 양념이 어우러져 얼마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왁자지껄하게 주고받으며 김장을 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100포기의 김장은 우리집으로 동생집으로 그리고 혼자 사는 외당숙과 외사촌에게로 나눠지곤 했다. 엄마의 100포기 김장은 고된 만큼 나눔의 미덕이 있었던 셈이다.
살아 계실 때 시어머님은 막내며느리가 아들과 함께 일하느라 애쓴다며 항상 김장김치를 담아 주시곤 했다. 다 만들어진 동치미와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는 얼마나 맛깔스러웠는지 모른다. 나는 항상 일이 많다는 핑계로 시어머님이 김장하는 모습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쉽다. 무슨 젓갈을 얼만큼 넣어서 그렇게 간이 딱 맞는지, 동치미에는 무엇이 들어가서 그렇게 시원한 맛이 나는지, 여쭤볼 수가 없어서 많이 안타깝다.
시래기로 말리는 무청
김장 김치를 담아 주시던 시어머님도 엄마도 돌아가셔서 세상에 계시지 않는 지금, 나는 김장에 도전해 보았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11월 7일)이 지나 11월 중순쯤 오일장에 나가보니 동치미 무가 많이 나와 있었다. 밭에서 금방 뽑아온 것 같이 무청은 살아있고 무는 싱싱했다. 세 다발을 만 원 주고 사 와서 무청은 잘라 시래기로 말리고 무는 잘 씻어 소금에 하루 동안 재워 놓았다.
예전에 시어머님이 담가 주시던 동치미는 시원하면서도 웅숭깊은 맛이 있었다. 나는 그 맛을 상기시키며 전통 동치미 담그는 법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국물을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재래시장에 가서 삭힌 고추를 사 와 넣었고 사과와 배, 양파와 마늘, 생강을 넣었다. 대파와 무청도 넣었다. 국물 간은 무에서 우러난 소금물을 기본으로 해 맛을 보면서 소금을 넣었다.
며칠 지나 동치미 국물을 먹어보니 꽤 괜찮은 맛이 났다. 익으면 맛이 더 들 거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 싶었다. 보름이 지나 동치미 무를 썰어 밥반찬으로 내놓았더니 남편도 딸도 맛있다고 한다. 물론 내 입맛에도 맞다. 삭힌 고추가 동치미 국물 맛을 제대로 내준 것 같다.
지난주에는 배추로 김장김치를 담아 보았다. 시어머님의 맛깔스러운 배추김치 맛과 엄마의 담박한 김치 맛을 상기시키며 우리집 입맛에 맞는 김치를 만들고 싶었다. 배추는 절인 배추를 구입했고 양념으로 쓸 젓갈은 멸치젓과 갈치젓과 새우젓 세 가지를 섞었다.
버무리고 있는 김칫소
20포기의 배추에 속을 채워 넣으려면 일이 많았다. 남편은 쪽파를 다듬고 무를 채 썰었다. 나는 배와 양파, 새우젓을 갈고 젓갈을 섞고 고춧가루와 기타 등등의 양념을 넣어 간을 만들었다. 사과즙과 매실청을 넣어 단맛을 첨가했다. 잘 섞인 간에 채 썬 무와 갓, 쪽파와 대파를 넣고 양념이 배도록 잘 섞어 주었다.
만들어진 김칫소를 먹어보니 젓갈의 감칠맛이 적당해 맛이 좋았다. 이제 절인 배추를 가져와 속을 넣어주면 된다. 배추에 속을 넣으며 김칫소를 얹어 먹어본 배추는 엄마와 함께 김장을 하던 그때를 상기시키는 추억의 맛이 배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만들던 담박한 김치 맛도 아니고 시어머님이 주시던 맛깔스러운 김치 맛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남편과 나는 너무 진하지도 않고 너무 옅지도 않은 우리에게 적당한 그런 맛의 김치를 만들었다.
남편과 함께 해서 생각보다 빨리 배추김치를 마무리했지만 나 혼자 준비한 김장의 전 단계가 있었고 끝나고 난 후 남아있는 갓으로 갓김치를 담고 다 치우고 나니 총 3일이 걸려 김장이 끝났다. 안 하던 일을 몰아서 해선 지 허리도 아프고 입술은 부르트고 몸이 고생을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의 집중된 노동으로 겨울 양식을 준비하고 일 년 먹을 김치를 마련한 거니 그만큼의 보람도 있고 뿌듯하다.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이 있는 11월은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쁜 시기이다. 입동 즈음에 동면하는 동물들은 땅 속에 굴을 파고 산과 들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간다.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분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다람쥐와 청설모는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주워 모은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자연 속에서 살아온 우리 인간들도 겨울을 잘 나기 위해 입동 즈음에 겨울 양식을 준비하며 겨울 채비를 갖추는 것일 게다. 세상이 좋아져서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음식들을 사 먹을 수는 있지만 우리의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우리의 풍습이고 전통이기도하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나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김장은 가족들에게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양식이요 에너지가 될 것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따뜻한 밥 한 끼와 더불어 내놓을 수 있는 맛있는 반찬이 될 것이다.
이제 11월도 다 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은 추운 게 당연한 자연의 이치지만 산에 사는 다람쥐나 고라니에게, 외딴 곳이나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혹독한 겨울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