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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마주쳤던 사람들

by book within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스쳐 지나간 이들도 있었고, 친구나 연인이었던 이들도 있었으며, 가족이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벗어나려고 애쓰며 살고 있지만, 제 안에는 여전히 약간의 불편함과 경계심이 쌓은 벽이 남아있습니다. 다행히 그 벽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주변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직 벽을 허물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어디에 있든지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벽의 존재를 처음 알아차린 건, 막 성인이 되었을 때입니다.

누군가 그 너머로 나를 들여다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황급히 안으로 도망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겉으로 보이는 말투나 행동거지가 그리 비호감은 아니었던 탓에 단단한 벽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었습니다.


진짜 나는 거울도 없는 집안에 숨어서 남들이 안보는 사이에

몰래 나와, 열심히 집과 벽을 수리하기 바빴습니다.


그런 모습을 들키거나, 잠시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친 이들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정이 되고 사랑이 되기도 했지만 저는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다들 지쳐 멀어졌고, 어느 누구도 쉽게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어진 습관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감정을 나누는 게 꽤나 어색했습니다. 표현하는 법도, 받아내는 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제발 알아줬으면'하는 마음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한 번도 뱉지 못했습니다.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저를 사랑하는 거라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척'하는 나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랬는지 돌아보며, 누군가를 용서하고, 오래된 일들을 진짜 내가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시작이 가능했던 것은 삶을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모든 걸 내어주었고, 맞은 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홀린 듯 모든 걸 내려놓았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바라는 대답을 해야 했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깨와 등은 긴장감을, 가슴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돌아보면, 그 모습이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추는 게 익숙했던, 그래서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누군가를 어렵게 만들던 나처럼. 그들도 같은 이유로 서툴렀습니다. 위로가 필요했고 도움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 겁니다. 그들의 어색함 속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가끔 누군가와 이어지는 무한한 어색함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돌아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만났던, 이미 지나가버린 사람들을. 그들이 다양한 형태로 제 삶에 흔적을 남겨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문장으로 옮겨지는 사람들은 전부 익명임을 밝히지만, 마음은 당연히 진심입니다. 지금이라도 감사함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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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