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자가 아니야

자아를 고정하는 것에 대해

by 카후나

난임 기간 동안 몸 상태는 인생 최고였다. 어느 때 보다도 건강한 생활을 했으니까. 난자질에 좋다는 단백질 위주 식사와 몸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를 챙기는 것은 기본. 밤 10시면 자고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는 건강한 습관까지 길렀다. 매일 한 시간씩 걷고 술도 멀리한 지 오래.


이러면 웃는 얼굴에 활기가 넘쳐야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비실비실 하다. 얼굴도 푸석푸석. 왜 그럴까?


몸을 사리게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무리하면 안 되니, 과배란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서 자주 가던 등산도 끊었다. 대신 천천히 걸었다. 평소 운동량이 많아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그동안 운동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그즈음 읽던 책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고 얼마나 공감했던지.

‘몸은 하던 짓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몸의 공식이다.

_ 박연준, <쓰는 기분>


3년째 하고 있는 아침 수영. 평소처럼 전력으로 발차기를 하다가도, 아 무리하면 안 되지, 하고 속도를 반으로 줄였다. 내 몸도 마음껏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구속을 느꼈다. 등산도 못하고, 술도 못 마시고, 이제 수영도 하고 싶은 만큼 못하는구나.. 자유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즈음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친구와 만났다. 우리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친구의 부모님도, 남편도 친구가 조금 늦게 잘 때, 조금 멀리 걸을 때마다 무리하지 말라며 난리라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자신을 작게 만드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스스로에게 무리하지 말자는 말을 하면 모든 의욕이 사그라 진다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둘이 손을 마주 잡고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우리 꼭 무리하면서 살자고. 그 순간 얼마나 큰 해방감을 느꼈는지.


그렇게 다짐했지만 여전히 의기소침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 씨가 의료인류학자인 이소노 마호 씨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가끔 인생이 신비롭다고 느끼는데 - 이 책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내가 꼭 만나야 할 인식이 우연히 찾아온 이 책에 마법처럼 들어있었다.


그 인식은 바로 내가 나를 환자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 일상만 보면 그럴 만도 했는데, 가장 자주 여는 앱은 병원 앱이었으며,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병원이었다. 주사를 맞고, 채혈을 하고, 주기적으로 약(주로 호르몬제)을 먹으니 일상은 딱 환자다. 아픈 곳이 없는데 생활이 이러니 스스로를 환자라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차수가 쌓이고 환자로의 자아가 너무 중요해져서 다른 자아를 모두 없애고 환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작 암과 함께 사는 미야노 씨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저는 암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라는 인간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얌전히 따르면 자신의 존재를 ‘환자’라는 역할에 고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불행이 생겨나는지도 모릅니다. 무척 얄궂은 이야기인데, 불운이라는 부조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을 고정한 순간 불행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_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부끄러웠다. 그녀는 암에 걸렸다고 울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았다. 본업을 뒤로하고 치료에만 매진하지도 않았다. 책도 쓰고, 강의도 하며 자신이 살 수 있는 최선의 인생을 살았다.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도 좀 더 용감해질 수 없을까 자문했다.

병에 걸려 불안에 쫓기던 저는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해서 자신을 지키려 했습니다. 최대한 혼란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 혼자 어떻게든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세계를 향한 믿음과 우연히 태어나는 '지금'에 몸을 내던질 용기를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오늘 빨간 유니폼으로 물든 야구장 관중석에서 새삼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아직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저는 사람들과 지금 마주함으로써 새롭게 일어날 무언가를 믿고 싶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미완결인 것들을 끌어안으며 나아가는 게 바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런 나를 인식한 후에도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수영할 때 남들은 모를 만큼 발차기를 빨리 한다거나, 환자가 아닌 자아를 다시 찾으려고 태권도 성인반에 등록하기도 했다. 세상으로 나를 다시 던지려고 용기를 내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1. 무리하지 말라는 말 - 듣지 마. 무리해도 괜찮아. 난임 기간 동안의 인생도 너의 인생이야. 무리하더라도 너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2.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닌다고 환자는 아니야. 너를 작은 상자 안에 가두지 마. 너를 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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